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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피격사건 처리방향과 한국의 입장|북방정책이 일보후퇴하더라도 소련추궁 미지근해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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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종열교수=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우선 KAL기격추를 국제법적인 측면에서 평가해주시죠.
▲유병화교수=원인이 밝혀지지않아 추정할수밖에 없지만 KAL기의 소련영공침범이 있었더라도 무력격추란것은 민간항공기의 안전운항을 보장하고있는 국제법에 위반된 것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유=소련에는 국경법이라는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유=1980년 10월4일 제정된 소련의 국내법이지요. 이 법의 36조에는 육지·해상·영공에 대한 침투에는 무기까지 사용할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소련자체의 국내법일뿐입니다.
국제사회에선 44년4월7일에 제정된 민간항공기에 대한 시카고협약 4조에 특별한 경우 무해통항을 할수있는게 원칙이고 제한·금지하는게 예외로 되어있어요.
그런데 공산권과 안보적 취약점이있는 국가들이 이런 예외를 오히려 원칙처럼 남용하는 경향이 있어요.
▲유=그럼 KAL기가 그런 조항을 위배했다면 어떻게 됩니까.

<소군 명령체제 경직>
▲유=고의적이든 조난이든 금지구역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이 비행기를 가장 가까운 공항에 가급적 안착하도록 요구하고 듣지않으면 강제착륙을 시킬수 있도록 시카고협약(9조C항)은 규정하고 있어요. 또 협약 25조는 자기 영토안에서 조난한 항공기에 모든 원조조치를 취해야하고 항공기등록 국가가 옵저버 파견등 필요한 조치를 할수있게 하고 있어요.
소련이 국경법을 내세운다해도 국제법이 보편타당하게 적용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이 사건의 원인을 어떻게 분석합니까.
▲유=아직은 추측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이번 사건의 원인을 4가지로 분석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우선 소련의 군사비밀보호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소련은 캄차카와 폐트로파블로프스크에 잠수함기지를 두고있고 태평양함대의 수상함 5분의4가 블라디보스토크와 나호트카에 있지요. 또 오호츠크해에는 소련의 핵추진전략미사일잠수함 15척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북방4도에서 사할린으로 이어지는 해역안에서 이 잠수함들은 노출을 꺼려 바다표면에 뜨질않고 잠수한 상태로 미사일을 전략목표에 조준하고 있습니다. KAL기가 거길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죠.
그러면 소련측이 군사비밀을 보호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길수도 있지요.
▲유=그렇지만 민간항공기가 들어갔다고 비밀이 노출되는건 아니잖아요.
▲유=소련이나 동구권의 민간항공기들은 정보수집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소련여객기가 보스톤 상공을 날다가 약간 궤도를 이탈해서 코네티커트의 미잠수함기지를 특수촬영장치로 찍어간다고 들었어요. 자기네들이 그러니까 남들도 그러리라 생각할수도 있겠지요. 또 민간항공기가 아닌 다른 목적의 항공기로 오인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될수만은 없을겁니다.
두번째로는 강제착륙을 시키려고 했는데 통신이 안됐다든지해서 지시가 안통하니까 쏠 경우도 상정되는데 소련측은 이 주장을 할겁니다.
또 한가지 소군부의 명령체계의 경직성도 지적할수있어요. 이번 KAL기를 격추시킨 전투기는 국가방공군소속이라는데 지역방공군사령부가 모스크바와 교신하는 수단은 인공위성과 지상의 마이크로웨이브 두가지가 있습니다. 이 통신상태가 별로 좋지않다는거예요. 그러나 군지도부가 소상히 정보를 못받고 의심스런 쪽으로 오판했을 가능성도 있지요.
▲유=일종의 정보의 갭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유=그렇죠. 마지막으로 소련의 대일·대한위협(intimidation) 전략의 측면을 고려할 수 있읍니다. 소련은 북방4도를 비롯한 일본근처에 굉장히많은 군사력을 배치하고 있어요. 활주로를 3천m 늘리고 플로그지대지미사일, 대함미사일등도 배치했지요.

<「레이건」입장 유리>
군사작전을 할때는 북해도근처 일본의 영해까지 위험지역으로 선포하고 어선등을 통과하지 못하게 해요. 일본이 미국이나 중공에 밀착하지 못하게 공갈을 치는 겁니다.
또 소련으로서는 한국을 위협할 필요도 있습니다. 소련태평양함대의 통로는 쓰가루, 소야해협과 제일좋은게 대한해협이지요. 유사시에 한국이 미국편을 못들게 하는것이 소련의 공개적인 정책이니까 위협정책의 하나로 KAL기를 격추했을 수도 있지요. 당장은 반발이 있더라도 국제관계는 결국 힘의 관계라고 생각하는거죠.
▲유=미-소, 일-소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유=미국은 이번 사건을 적극 이용할 겁니다. 유럽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하면 소련측이 정보를 입수해서 유럽의 평화운동가들에게 흘리는 바람에 반핵시위등에 시달려오지 않았어요.
미국측으로서는 소련이 핵군축운운하지만 민간인까지도 죽이지 않느냐고 공세를 취할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미소관계가 냉각될지는 얼른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일본의 대소자세는 상당히 경직될 것으로 봅니다.
소련의 위협전략을 빤히 알면서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다가 차제에 내놓고 그동안 못한말을 할겁니다.
▲유=아뭏든 대소강경책을 추구해온「레이건」미국대통령이나 재무장론을 주장하고 있는 「나까소네」(중증근강홍) 일본수상의 입장은 상당히 편해졌을것 같군요.
▲유=아뭏든 이 사건자체는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내용으로한 우리의 북방정책에 찬물을 끼얹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사건의 여파가 북방정책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 단정하긴 어렵지만 몇가지 고려할 점은 있지요.
첫째 이번 사건으로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우리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것을 인식한 소련에 우리와의 접근의욕이 높아질 수도 있지요. 이 사건으로 한소는 직·간접의 대화를 해야할것이고 사실상 서로를 사실관계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될 것입니다.
이 경우 양자관계는 진일보할 요인이 생기는 거죠.

<소본질 다시 파악을>
그러나 사건의 성질상 미일의 반소무드와 우리가 행동을 같이하지 않기가 어려운법인데 그러다보면 양자관계는 퇴보할 것입니다.
▲유=국가와 국가간의 관계개선은 상대측에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역시 상호간의 이해관계가 좌우한다고 봐야지요.
따라서 우리의 북방정책 추진 때문에 이번사건을 미온적으로 처리하든가 자제해서는 안됩니다. 이럴 때 일수록 오히려 떳떳하고 정정당당하게 주장할 것을 주장하는 의연한 자세로 나가야 얕보이지를 않습니다.
▲유=결론적으로 전망하면 이 사건이 우리의 북방정책 추진을 단기적으로는 냉각시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꼭 저해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가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조바심을 할 전략상의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소련은 연해주의 북한총영사관원들이 그곳 한국동포들을 함부로 만나지 못하게 한다고 해요.
소련은 이렇게 고압적이고 괴상한 나라예요. 그러니 소련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관계개선을 통해 얻을게 뭔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유=어쨌든 이번 사건으로 인명희생국인 한·미·일·캐나다등 15개국과 소련간에 분쟁이 발생했고 현실 국제법상 이 분쟁은 평화적방법으로 해결돼야하는데 거기에는 여러방법이있어요.
▲유=우선 제1의 당사자인 한·소 양측의 직접교섭에 의한 해결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지금 형편으로는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유=그래서 미·일·가등과 함께 유엔안보리에 제소하는 방안이 나왔는데 세계여론을 모으고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는 장으로는 훌륭하지만 국제심사위를 조직해 이 사건을 조사하고 이에따라 결의안 또는 잘잘못의 결정을 내리려면 소련의 거부권행사라는 냉엄한 벽에 걸립니다.
그러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경우는 실질적 제재가 가능해 유엔안보리와는 다릅니다. 시카고협약 84조는 항공사고에 의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 무망할 경우 ICAO이사회에 제소해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길을 터놓고 있습니다.
ICAO이사회는 우선 조사팀을 구성해 그 조사결과를 토대로 소련의 잘못이 명명백백할 경우 합법적으로 여러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예컨대 소련여객기의 외국공항착륙편수제한조치등입니다.
▲유=74년 이스라엘군용기에 의한 리비아여객기 격추사건때 실제로 조사단이 구성된 일이 있는데 이번 경우 소련이 조사단의 입국을 허용하겠느냐가 문제입니다.
▲유=그럴 경우 ICAO이사회는 여러 정황을 토대로 사실 판정을 내리고 그에따라 결정을 할 수도 있겠지요.
이마저 소련이 거부할경우 시카고협약 85조에 따라 한·소양측이 중재재판소를 설치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양측이 중재인을 각각 1명 선정하고 이 2명이 재판장을 선정하는데 양측간의 재판장임명이 안될 경우 ICAO의장이 ICAO이사회에 비치된 적격자목록중에서 1인을 재판장으로 지명하게 돼있고 이에따라 구성되는 중재재판의 결정은 구속력이 있습니다.

<배상거부 어려울 듯>
▲유=또 다른 방법으로는 국제재판소에(ICJ)제소하는 것인데 이 경우 소련의 지금까지 관행으로 봐서 ICJ의 강제관할권을 수락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유=따라서 사건에 대한 가장 최선의 방안은 71년에 소련도 가입한 ICAO의 이사회에서유리한 결의나 결정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소련이 ICAO결정마저 거부한다면 소련은 국제공동체에 참여하면서도 그 규율에 따르지 않는다는 불법자의 낙인을 다시한번 찍히게되지요.
▲유=소련이 적어도 인명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은 거부하기 어려울 겁니다.
▲유=그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배상액이죠. 소련과 우리를 포함한 피해국들의 배상액산정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게 뻔합니다. 불가리아는 55년 격추시킨 이스라엘여객기에 대한 피해배상때 인명배상으로 2백50만달러를 요구한 이스라엘측에 대해 8년후 고작 19만5천달러를 지급했습니다.
▲유=소련의 만행에 대해 정치·외교적으로 당장 가능한 대처방안은 미국등의 대소곡물수출동결등 여러압력수단이 있겠으나 우선은 소련여객기 에어로플로트의 전세계적 운항제한이 가장 실효적인 방법이 아닐까요.
▲유=아뭏든 우리는 진상규명·진사·배상·책임자처벌·사고재발방지보장을 어떤형태로든 소련으로부터 받아내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합니다. <정리=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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