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 4곳 전패] 울고 웃은 후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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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가운데)등 지도부가 26일 국회 당의장실에서 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다 패색이 짙어지자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10.26 국회의원 재선거가 끝났다. 경기도 광주와 울산 북구는 살얼음판 승부를 펼쳤다. 중앙당의 승부 못지않게 현장 후보들이 품은 사연은 파란만장했다. 승자 환호의 뒤안길에서 패자는 홀로 쓴 잔을 곱씹고 있다.

◆ 천국과 지옥 오르내린 유승민=한나라당 유승민 후보는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의 조직에 밀린 데다 선거운동 기간이 짧아 고전했다. 이 후보 측이 반년 넘게 선거운동을 한 데 반해 유 후보 측은 조직조차 정비되지 않아 분위기를 띄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후보가 열린우리당이라는 정당 간판을 감추고 인물과 공공기관 유치라는 카드를 내세우면서 선거전은 심상치 않았다. 대구가 오랫동안 야당도시로 낙후되다 보니 '힘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이 후보의 주장이 먹혀드는 분위기였다.

그래선지 유 후보는 당선이 확정된 뒤 "공공기관 유치와 관련해 박근혜 대표를 조직적으로 음해해 주민들이 많이 오해했고, 이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실토했다.

유 후보 당선의 일등공신은 한나라당 박 대표다. 박 대표는 선거운동 기간 중 다섯 차례나 대구를 찾았다. 여기에 모친이 위독했던 이회창 전 총재도 가세했다. 유 당선자는 이 전 총재의 현역 시절 그의 최측근이었다. 한나라당 선거본부 관계자들은 선거 전날인 25일 박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동구에 공공기관을 유치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선거도 이변이 없을 것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지역 벽을 넘어보려던 이강철 후보는 막판 박 대표의 총력전에 막혀 마지막 능선을 넘는 데 실패했다.

◆ 명예 회복 무산된 이상수=이상수 전 의원은 자신의 정치 인생을 걸고 연고도 없는 부천 원미갑 선거에 '올인'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시의원 3선을 지내긴 했지만 중앙 정치무대에선 신인이나 다름없는 한나라당 임해규 후보에게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이 전 의원은 선거 플래카드에서 열린우리당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적어 놓는 등 최대한 당을 부각시키지 않으려 애썼다. 대신 중앙 정치무대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이력과 정.관계의 넓은 네트워크를 앞세워 '힘센 후보'론으로 밀어붙였다. 이 전 의원 측은 선거 초반 형편없이 임 후보에 뒤졌지만 선거 운동이 진행되면서 지역개발을 바라는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지지도가 서서히 올라갔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바닥권을 헤매는 당 지지율과 불법 대선자금의 멍에를 끝내 벗어던질 수 없었다.

이 전 의원 측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이 훨씬 쉬운 정치일정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나라와 당을 위해 어려운 길을 택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아쉽다"며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당선된 임해규 후보는 "이번 승리는 경제와 민생을 살리라는 유권자들의 애타는 요구"라고 말했다.

◆ 진보 텃밭에서 보수 의석 되찾아=한나라당 윤두환 당선자는 민주노동당의 텃밭인 울산북에서 권토중래에 성공했다. 울산 북구는 근로자들이 전국에서 가장 밀집한 선거구다. 9만8000여 명의 유권자 중 현대자동차 노조원만 1만 명이 넘고, 노조원 가족과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포함하면 노동계 우호층이 절반 이상이다.

그 덕분에 민노당이 내리 두 차례 구청장을 배출했고 지난해에는 구청장과 국회의원 모두 민노당이 싹쓸이를 했다. 한나라당 유력자들이 나서기를 꺼리는 이유다. 그런 울산 북구에서 윤 당선자는 17대 총선 8000여 표 차이 패배를 1년6개월 만에 설욕했다. 윤 당선자는 "의욕만 앞선 이념정치에 속아 잃어버린 2년을 되찾자는 데 유권자들이 동의해 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민노당은 지도부가 총출동했는데도 패배하자 충격에 휩싸였다. 울산 지역정치인들은 "민노당의 가장 큰 패인은 당과 민노총 간의 갈등 때문에 현대자동차와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표를 결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울산=이기원.대구=황선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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