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라운지] 대재앙 극복 두 대사에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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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올해는 유독 자연재해로 인한 재앙이 많았다. 지난해 말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해일(쓰나미)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대형 허리케인이 미국 동남부와 중미 지역을 잇따라 강타했고, 카슈미르 대지진은 서남아시아를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수만 명이 사망하는 등 피해 규모도 엄청나다. 요즘엔 재난 극복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자국의 피해를 알리며 구호작업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주한 파키스탄 대사 대리와 과테말라 대사를 만났다.

아메드 파키스탄 대사 대리
"한국 NGO 발빠른 구호에 감동"

카슈미르 대지진으로 집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이 21일 파키스탄령 무자파라바드 부근에 마련된 난민캠프 앞에서 구호품을 받기 위해 길게 줄지어 앉아있다.

26일 오전 서울 이태원동에 있는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이곳은 바깥에서 보면 여느 대사관의 풍경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임티아즈 아메드(43.사진) 대사 대리의 집무실 안은 달랐다. 직원들은 수시로 울리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다. 사무실 여기저기에 마치 택배회사 사무실처럼 라면 박스만한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대사 대리의 책상 한 켠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어로 '파키스탄 구호품'이라고 쓰인 표지들이 눈에 띄었다.

아메드 대사 대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지진이 일어난 8일부터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입을 열었다. 각계의 구호금.물품을 접수하는 한편 파키스탄으로 떠나는 비정부단체(NGO)회원들을 연거푸 만났다고 했다. 그는"대사관 전화와 팩스가 이렇게 바빴던 적이 없었을 것"이라며 "여기저기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쇄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파키스탄 지진을 언급할 때마다 "엄청난 비극"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번 지진 때문에 파키스탄은 사망자 5만3000여명, 부상자 7만5000여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 집을 잃은 이재민만 300만명이 넘는다.

아메드 대사 대리는 "한국 NGO의 발빠른 구호활동에 감동받았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진이 일어나자 마자 의사와 구조대원 등 NGO 회원들이 파키스탄으로 떠났습니다. 바로 이튿날 말입니다. 현재 파키스탄에 가있는 NGO 회원만 해도 21개 단체에 300명이 넘습니다."

그뿐 아니다. 한국 정부가 300만달러의 구호금을 약속했고 기업.개인의 자발적인 참여도 잇따랐다.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문의 전화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사관 차원에서 구호금 모금을 위해 10일 개설한 은행 계좌(제일은행 130-20-223351,예금주:파키스탄 국립은행)에는 1만원.10만원 단위의 성금이 답지했다. 26일에 80만달러(약 8억4000만원)를 넘었다고 한다.

그는 "구호품을 들고 대사관으로 직접 찾아온 분들도 있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인류애를 가슴 깊이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메드 대사 대리는 더 많은 도움을 호소했다. 피해 지역 상황이 워낙 심각해 구호품을 실어나를 헬리콥터와 이재민이 발 뻗고 잘 텐트가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이재민에게 공급된 텐트는 필요량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2주 후 히말라야 산간 지역에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에 그들에게 텐트를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진 지역은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학교도 병원도 집도…. 무너진 마을과 도시를 복구하려면 적어도 5~10년은 걸릴 것입니다. 파키스탄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세요." 아메드 대사 대리는 간곡한 호소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글=이은주, 사진=변선구 기자

살라자르 과테말라 대사
"국제적 관심 적어 구호 손길 부족해요"

"과테말라도 얼마 전 허리케인으로 말 못할 피해를 봤습니다. 현재 온 국민이 복구에 힘을 모으고 있지만 워낙 피해가 커 정상을 되찾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라파엘 살라자르(사진) 주한 과테말라 대사는 26일 초대형 허리케인 '스탠'이 휩쓸고 지나간 자국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달 초 중미 지역을 강타한 스탠은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멕시코.니카라과 등에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가장 피해가 심했던 과테말라의 경우 확인된 사망자만 660여 명. 실종자까지 합하면 최소한 15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예상 피해액도 8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서쪽으로 180㎞ 떨어져 있는 파나바 마을은 산사태로 1㎢에 달하는 마을이 몽땅 두께 6m의 진흙에 덮혀 버렸다. 현지 언론들은 "눈 깜짝할 새 마을 하나가 공동묘지로 변해 버렸다"고 전했다.

살라자르 대사는 "엄청난 재앙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은 실정"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바로 직후에 대지진이 발생한 카슈미르 지역으로 세계 각국의 구호가 몰리면서 과테말라 등 중미 지역은 소외됐다는 얘기다.

그는 "쓰나미에 이어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대지진까지 이어지면서 국제사회에 '구호 피로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우리도 매우 절박한 상황"이라며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한국 정부는 30만 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구호품 문의 전화 02-771-7583.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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