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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인사와 집단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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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러나 아는 사람끼리,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 일하는 게 오히려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1961년 4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위해 시도했던 피그즈만 침공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미국은 이 침공에 실패해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뒤돌아보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큰 허술한 작전이었다. 그런데도 케네디 대통령 등 미국 엘리트 그룹은 이 작전의 약점을 보지 못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이를 '집단 사고(group thinking)'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는 이라크 전쟁이 미 정보당국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저질러졌으며, 정보 집단의 '집단 사고'가 잘못된 판단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정보의 신뢰성이 약했는데도 집단 사고에 사로잡힌 정보 당국이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채 이라크 전쟁의 당위성에 집착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집단 사고로 인한 '대형 사고'는 이런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의사결정 집단이 비슷한 생각이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돼 '우리'라는 의식이 강할 때, 권위주의적 리더 때문에 반대 의견을 내놓기 힘들 때,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신들이 최고의 전문가라고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을 아주 짧은 시간에 할 때 등.

노무현 정부 들어 '코드 인사'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의 집단 사고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요즘엔 코드 인사의 외연(外延)이 확대되고 있다. 새로 임명된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해 탄핵심판 때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다. 검찰총장에 내정된 정상명 대검차장은 대통령의 사법고시 동기생 친목모임인 '8인회' 멤버다. 인품과 능력에 관계없이 코드 인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대법원과 검찰이 '알아서' 움직이는 곳이 될까 걱정이다.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변호인 12명 중 8명이 대법원장.대법관.헌법재판관.사법제도개혁위원장 등 요직에 임명됐다. 노 정부 탄생에 크게 기여한 안희정씨의 불법정치자금 사건 때 안씨 측 변호사 세 명이 현재 청와대에서 비서관.행정관으로 일하고 있다. 내년에 대규모로 이뤄질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인사가 어떤 모습일지 뻔하다는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을 정도다.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의사결정 집단에 '건설적인 비판자'를 둬야 한다. 자기 검열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옛 유대인 사회의 의결기구 '산헤드린'은 만장일치로 이뤄진 결정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다음날까지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가 다시 결정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는 대한민국에 새 질서를 세우기 위해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모양이다. 그러나 같은 코드로 뭉친 사람들끼리 힘을 합칠 때 시너지 효과보다는 집단 사고의 폐해가 더 커지기 쉽다.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이다. 새 질서를 세우려면 모든 현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집단 사고에 사로잡힌 코드 인사로는 모든 현실을 볼 수 없다.

이세정 정책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