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수사’ 박상옥 대법관 후보 논란 … 참여연대 이어 서울변회도 반대 성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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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58)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오는 11일)를 앞두고 대법관 자격 논란이 불거졌다. 박 후보자가 1987년 서울지검 검사 재직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박 후보자는 "상세한 내용은 청문회에서 밝히겠다"고 입장을 내놨지만 야당은 물론 법조계 일각에서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파문이 커지는 모양새다.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박종철군은 1987년 1월 13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불법 연행돼 경찰의 물고문 등을 받다가 다음날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수사관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단순 쇼크사라고 발표했다. 관계 당국에선 서둘러 시신을 화장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의 지시로 안상수 검사(현 창원시장)가 부검을 지휘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쇼크사가 아닌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나오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경찰관 2명을 구속한뒤 수사를 마무리(1차 수사)했다. 그러나 구속된 경찰관들과 함께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부영 전 의원이 1987년 2월 "고문치사에 가담한 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메모를 외부에 전하며 은폐·조작 시도를 처음으로 알렸다. 검찰의 재수사로 고문 경찰관 3명이 추가기소(2차 수사)됐다. 박 후보자는 1, 2차 수사에 '말석' 검사로 참여했다. 그가 수사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드러난 게 없다.

일단 새정치민주연합은 3일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담당 검사 경력을 고의로 숨긴 의혹이 있다"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참여연대도 "역사적 책임을 져야할 인물이 대법관이 돼서는 안된다"며 사퇴해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4일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가 성명을 내 "박 후보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와 조작에 관여한 주역이다. 그의 대법관 임명을 반대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초기에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점에 대해 수사검사의 한 사람으로 매우 안타깝고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당시 역할에 대해서는 청문회에서 성실하게 밝히겠다"고 말했다. 또 국회에 제출된 임명동의안에 박종철 사건 수사 경력이 누락된 경위에 대해선 "통상적인 방식에 따라 근무처, 근무기간, 직위만 기재했기 때문이며 일부러 누락할 이유가 없다"고 해명했다.

당시 박군 부검을 지휘했던 안상수 창원시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부검을 통해 고문치사라는 진실을 밝힌 검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 당시 박 후보자는 수사팀 막내로서 수사를 주도할 위치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안 시장은 "수사팀은 그해 2월 구속 경찰관으로부터 '고문 수사관 3명이 더 있다'는 진술을 받은 뒤 수사계획서를 작성, 상부에 보고까지 했지만 당시 안기부가 주도한 정권 차원의 외압 때문에 수사가 지연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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