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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그리스 집권당 시리자는 키메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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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니코스 콘스탄다라스
카티메리니(그리스 신문)
칼럼니스트

지난 수주간 그리스 조기 총선 승리를 향해 달려온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는 안팎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지난 6년의 경기 침체와 불안정에 지치고 절박해진 그리스 국민들은 시리자의 긴축 폐지 정강을 국가주권 회복 노력과 구원의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그러나 이제 겨우 회복 조짐을 보이는 그리스 경제가 유럽연합(EU) 채권국과의 충돌로 치명타를 입지 않을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외국 분석가들은 시리자가 그리스의 긴축 정책과 EU의 정치·경제 논리에 대한 반발로 집권했다고 해석한다. 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과 더불어 그리스에 자금을 대준 EU 회원국들은 세금이 그리스 빚 탕감에 쓰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포퓰리즘에 기반한 저항이 다른 채무국으로 번져 나갈지에 대해서도 우려한다.

 1월 25일 총선 얼마 후 시리자는 예측하기 어려운 키메라(chimera·사자 머리, 염소 몸통, 뱀 꼬리를 한 그리스신화 속 괴물)가 됐다. 시리자는 여러 정파와 정치 논리의 연합체다. 새 내각은 말 많은 범세계주의자적 학자에서부터 바깥 세상 경험이 별로 없는 공산주의자 노조원까지 아우른다.

그리스의 새 연정은 명백히 채권단과의 충돌을 향해 가고 있다. 대규모 부채 탕감을 밀어붙이고 지난 정부가 마지못해 추진해 온 여러 구조개혁을 없애려 한다. 새로 취임한 장관들은 민영화 프로그램 감축과 해고된 공공분야 종사자의 재고용을 발표하면서 채권단이 요구했던 조치를 철회하고 있다. EU의 여러 지도자는 그리스에 구제금융 제공 당시의 합의를 이행해야 하며, 자국 세금으로 그리스 채무를 탕감해 줄 수는 없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채권단 트로이카(ECB, IMF, 유럽위원회)의 구제금융 점검단이 지난해 11월 중지된 감사를 끝내지 못하면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이달에 종료된다.

시리자는 트로이카를 인정하지 않으며, EU의 다른 의사결정 기구와 협상하겠다고 선언했다. 시리자 당수이자 새 총리인 치프라스는 유로존을 탈퇴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자본시장과 격리돼 있는 상황에서 채권국은 시리자 요구에 굴복할 생각이 없다. 구제금융 자금을 소진한 후 그리스 경제가 어떻게 굴러갈지 제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리스는 정치적 주변 세력(시리자)이 경제 위기로 발생한 대중의 분노를 타고 집권해 EU 정책 책임자에게 도전장을 던진 최초의 회원국이다. 긴축·개혁과 구제금융 합의 프로그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수정이 필요하다. 그리스가 추가 구제금융을 필요로 하지 않으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한다.

시리자는 지난 40년간 그리스를 이끈 주류 정당이 아닌 만큼 그리스를 병들게 했던 부패와 탈세, 불평등을 퇴치하는 데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 사상을 갖고 있다. ‘큰 정부’를 지향하고 정치가 파괴적 역할을 하는 경제와 교육체계를 구상한다. 변화의 잠재력과 더불어 지난 수 년간의 개혁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위험성을 함께 갖고 있는 셈이다.

 149석의 시리자와 13석의 그리스독립당 연정은 그리스 정치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그리스독립당은 시리자의 자유사회주의 정강인 이민자 권리 확대, 동성결혼 인정, 정교 분리, 인권 보호와 반대되는 정책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공통점도 있다. 그리스독립당 대표 파노스 카메노스는 치프라스보다 더욱 거세게 독일을 공격한다. 두 사람 모두 그리스가 유례없는 성장과 안정, 번영을 구가했을 때 정치에 입문했다.

그리스 공산당 학생 운동가로 활동했던 치프라스는 목적 달성을 위해선 권위에 저항하고 최대한의 요구를 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부유한 기업가 아들인 카메노스는 일찍이 주류 정치에 안착해 기득권에 뿌리를 내렸고 창당 전엔 보수 정권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시리자가 EU 채권국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수사나 행동 면에서는 좌파보다 더한 카메노스를 연정 파트너로 삼은 이유다.

 그리스와 채권국의 정면 대결은 포퓰리즘과 도그마의 충돌로 볼 수 있다. 시리자는 대중의 분노와 좌절을 이용해 집권했고, 채권국과 국제금융기구는 긴축정책이 한 국가와 국민을 파괴하는 것을 보면서도 긴축을 고집했다. 민주적 절차로 당선된 그리스 정부가 채무 상환 약속을 저버리면 채권국 납세자가 희생당한다. 반대로 채무 상환을 위해 EU가 긴축정책을 밀어붙이면 그리스 유권자의 의지를 꺾어버린다.

이도 저도 안 돼 EU가 그리스를 꼿꼿한 고립 상태로 남겨두면 그리스 경제는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유권자의 36%와 5% 미만의 선택을 각각 받은 시리자와 그리스독립당이 저지른 실수의 대가를 전 국민이 부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스 정치 상황은 처벌이 아니라 희망으로 도약하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과 더불어 유럽 국민 간 관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요구한다.

니코스 콘스탄다라스 카티메리니(그리스 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