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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썰전] 지나친 입법만능주의 경계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관기 변호사(김박법률사무소)

 

공사를 막론하고 조직의 구성원은 조직에 충성할 것이 요구된다. 물론 직위를 이용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변종은 있다. 조직의 권력을 횡령하는 이들을 제재하지 않으면 조직은 생존할 수 없다. 직무의 청렴함을 강제하는 윤리 규정을 마련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대한 위반은 형사처벌을 받는다.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한 금품 수수는 받는 사람 주는 사람 모두 처벌받고 뇌물은 요구, 약속만 해도 범죄다. 제3자도, 알선도 처벌받는다. 재판 실무는 매우 엄격하다. 직무 관련성은 광범위하게 추정되므로 금품의 수수가 증명되면 공직자가 빠져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유죄가 인정되면 거의 예외 없이 징역형이다. 민간인도 마찬가지다. 부정한 청탁이 매개된 경우 배임수재죄로, 손해가 발생하면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받는데, 웬만한 청탁은 다 부정한 것이고 손해도 증명하기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사처벌은 최소한의 법적 강제일 뿐이다. 공직자는 이유 없는 선물을 거절해야 한다. 자신과 가족, 친지와 관련된 업무를 피하거나 이해관계를 공개해 다른 사람들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청탁은 물리쳐야 하고 그 사례는 보고하여 다른 조직원과 공유해야 한다. 또 이런 자세를 공무원에게만 요구할 이유도 없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임직원도, 교직자도, 은행원이나 대기업의 직원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의 가족도 근신해야 할 것이다.

 공인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분노가 비등할 때 국민 정서는 강력한 조치를 기대한다. 금품 수수를 이유로 공직자를 벌하는 데 직무 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가족도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처벌하며 언론인과 교원까지 공직자에 준하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속칭 ‘김영란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반응이다. 이들은 조직이 직무 규정 위반을 이유로 견제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무 수행을 빙자하여 화려한 의전을 즐길 가능성도 매우 큰 자들이다. 입법 취지에 따르면 국회의원에 대한 정치자금 명목의 금전 후원부터 금지해야 한다. 이것을 뺀다면 법안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그러나 중·하위직 공직자와 민간인, 이들의 가족까지 형사처벌로 위협하는 것은 지나친 입법만능주의다. 중대한 위반은 현행법으로도 형사처벌을 받고, 그 정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중징계 사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존을 위협하므로 형벌보다 못하지 않은 제재 시스템이다. 사소한 위반에 대한 광범위한 형벌은 민주국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권력의 과도한 팽창이다.

 공직자에 대한 청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누구든지 공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공무원은 심사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든가 부당한 청탁이라면 거절하든지 무시한다. 그러나 청탁이 부당하다고 이를 모두 보고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면, 그것은 공무원에게 또 하나의 일거리를 얹어 준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상호 감시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필요로 하게 된다. 육상의 해군까지 건설하게 된다. 그것은 가뜩이나 힘든 국민의 세금 부담을 늘린다. 공무원은 가능하면 시민과 접촉하기를 꺼리게 될 것이다. 법적 의무와 근거가 없다는 핑계로 일을 안 하려고 할 수 있다. 침몰하는 배, 불타 오르는 건물을 앞에 두고 공무원이 부탁의 정당성을 따질 여유가 있겠는가.

 입법의 목적이 좋다고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공직자에 대한 불신을 핑계로 모든 시민이 서로 감시하는 전체주의 체제를 만들어낼까 두렵다. 어디에나 변종은 있게 마련이다. 가려내고 처벌하면 된다. 빈대 잡으려고 집을 태울 수는 없다. 보험금 노리고 살인을 하는 자가 있다고 생명보험산업을 없앨 수 없듯이, 공직의 부패가 우려된다고 전체 시민의 자유를 축소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다. 사람의 일이 그렇듯이, 정부를 포함해 사람이 만든 모든 체제는 어느 정도의 실패가 있게 마련이다. 빈틈을 전부 메우려고 하는 시도는 체제를 망가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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