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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2047만명이 공짜 혜택 … 이런 건보 지속가능하겠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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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03면

중앙포토

정부는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안을 올해 안에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부분적 개선만 할 계획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과제이자 1년7개월 동안 추진해온 작업이 크게 후퇴한 것이다.

김종대 전 건보공단 이사장의 ‘건보 개혁 불발’ 쓴소리

건강보험공단은 2013년 7월부터 각계 전문가를 모아 부과체계 개선기획단(단장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을 꾸렸고 지난달 29일 개선안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고소득 직장가입자(근로소득 외 임대·금융 소득 등)와 피부양자(연금 등을 받는데도 가족의 직장 건보에 이름을 올린 사람) 등 45만 명에게는 보험료를 더 물리고 ‘송파 세 모녀’처럼 저소득층 602만 명의 보험료는 줄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부담이 늘어나면 불만이 있을 것 같다”며 개선안 공개 자체를 백지화했다. 연말정산으로 촉발된 증세 논란이 건강보험으로 옮겨붙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설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저소득층 부담 완화를 외면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자 복지부는 지난달 30일 저소득 지역가입자(연소득 500만원 이하)의 보험료를 줄이는 등의 땜질 처방에 나섰다.

건보 부과체계가 어떻길래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까. 김종대(68·사진) 전 건보공단 이사장을 만나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직격 인터뷰했다. 그는 이사장 취임(2011년 11월) 직후부터 부과체계 개선안 마련을 진두지휘했다. 지난해 11월 3년 임기의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강원도 영월에 머물고 있다. 중앙SUNDAY는 지난달 29일 영월로 달려가 그를 만났다. 마을 입구에서 비좁은 길을 따라 10분쯤 걸어 들어가니 만년설 같은 하얀 눈 쌓인 산자락에 집 한 채가 나타났다.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이다.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오리털 점퍼와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모습은 영락없는 촌로(村老)였다. 그는 “떠난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문도 열어주지 않더니 “그래도 먼 길을 왔으니 차나 한잔 하고 가라”며 집 안으로 안내했다.

소득 중심 부과는 ‘굽은 걸 펴자’는 것
-이곳에서 뭘 하고 지내나.
“주로 공부를 한다. 역사와 철학 책을 끼고 산다. 요새는 노자와 장자, 사기(史記) 등을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14일 퇴임식을 하고 바로 그날 저녁 여기로 왔다. 치아 치료를 받으러 서울에 서너 번 올라갔고 그 외에는 여기서 혼자 묵는다. 신문이나 TV는 잘 안 본다.”

-뉴스를 안 보면 개선안 발표 백지화 소식은 못 들었겠다.
“어제 공단 직원한테 들었다. 오늘 잠깐 읍내에 나갔다 왔는데 기자들한테 전화가 수도 없이 많이 와 있더라. 내가 가타부타 말하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아 받지 않은 것도 있지만, 여기서는 전화가 터지질 않는다.”
사실이었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기자의 휴대전화는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안테나 표시창은 한 칸과 통화 불능을 수시로 오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마을을 벗어나서야 기자의 전화 액정에도 ‘부재중 11통’이 선명하게 떴다.

-정부 결정이 많이 아쉬울 텐데.
“잡담이나 하자고 안으로 들인 건데…. 전 국민 건강보험(1989년)이 된 지 25년이 지났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기준은 그대로다. 내가 건보공단 이사장으로 오자마자 시작한 게 부과체계 개선안 마련이었다. 6개월간 부과체계 개선에 대한 연구를 해 ‘실천적 건강복지 플랜’을 만들었다. 수시로 건의했다. 개선안을 공개하기로 했다가 복지부가 만류해 네다섯 번 연기됐다. 임기 동안 바꾸고 싶었는데 공단은 법을 바꿀 수 없어 건의만 하다 끝났다. 이번에도 1년7개월 노력이 수포가 됐다. 굽은 걸 바로 펴자는 건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걸 갑자기 백지화하다니, 허허~.”

-현행 건보체계는 어떤 문제가 있나.
“동일 보험집단에 동일 기준 적용이 상식이다. 지금은 가입자마다 부과 기준이 다르다. 월급쟁이 직장가입자도 과외소득이 7200만원이 넘으면 더 낸다. 지역가입자 중 연간 종합소득 500만원 이상과 이하가 또 다르다. 성·연령·자동차·재산에도 보험료를 매긴다. 인두세 성격이나 갖고 있어 봐야 돈도 안 나오는 재산에 보험료를 매기는 게 연간 90조원 정도다. 대부분 나라가 소득기준으로 보험료를 매기는 것과 차이가 있다.”

-보험료를 내지 않고 자식에게 얹혀 가는 피부양자 문제도 많이 지적된다.
“공짜 타고 가는 사람 중에 그래야 할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다 타고 있다. 그게 2047만 명 정도 된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인데 40%가 공짜로 혜택을 받고 있는 거다. 이런 구조가 과연 지속 가능하겠나. 또 다른 극명한 예를 들어보면 애가 태어났다 치자. 이 아이가 운 좋게도 직장가입자 부모한테서 태어나면 피부양자니까 보험료를 안 낸다. 그런데 자영업을 하거나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한테서 태어나면 보험료를 물린다.”

-김 전 이사장도 무임승차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내가 그래서 제도를 바꾸자는 거다. 나 같은 사람은 보험료를 좀 더 내고 어려운 사람은 덜 내게 하자는 거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만 해도 전셋집에 살면서 지역가입자로 월 5만원의 보험료를 냈다. 그런데 나는 아내가 일을 해 이사장에서 물러나자마자 피부양자로 얹어 한 푼도 안 낸다. 4000만원 가까운 연금을 받는 내가…. 50대 중후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로 쏟아져 나온다. 상당수는 무임승차 대기자다.”

공단 직원도 잘 모르는 기준 고쳐라
-설명을 들어봐도 부과체계는 여전히 어렵다.
“건보공단 직원 1만3000명도 잘 모른다. 민원인이 찾아와 보험료를 따지면 두꺼운 책자를 들춰 보며 찾아야 한다. 정책은 단순해야 한다. 그래야 설득과 이해가 가능하고 동의를 구할 수 있다. 한 시간을 설명해도 모르는 정책이라면 그건 거둬야 하는 거다.”
현행 건보료의 부과체계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에만,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재산을 합산해 건보료를 매긴다. 이 때문에 지역가입자는 실직해 소득이 없어도 집이나 자동차가 있으면 건보료를 과하게 부담해왔다. 소득이 많아도 피부양자로 등록되면 건보료를 내지 않는 경우에 비해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기획단의 개선안은 소득 중심으로 바꿔 지역가입자들의 건보료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었다. 또 소득이 많은 피부양자도 보험료를 물리도록 했다. 김 전 이사장은 서울에 5억원짜리 아파트와 영월에 부동산도 일부 있다.

-부과체계 개선이 건보를 어떻게 바꾸나.
“키(key)는 지속 가능성이다. 보장성을 확보하면서 지속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 민간 보험과 원리는 같다. 보험은 수지가 안 맞으면 깨지게 돼 있다. 사회보험이니 형편이 나은 사람은 좀 더 내고 그렇지 않으면 좀 덜 내고 하는 거다. 현행법상 보험료 체납이 6개월 이상이면 병원 진료를 못 받는다. 내가 그만둘 때 당시 158만 가구가 거기에 걸려 있었다. 체납액이 2조3000억원에 달한다. 왜 이 사람들이 보험료를 체납했을까. 부과 기준이 형평성과 공정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안 내는 사람과 못 내는 사람은 구분해야 하지 않나.
“돈을 벌면서도 못 내겠다고 버티는 악질적인 체납인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30% 정도라면 나머지 70%는 못 내는 경우다. 버는 돈은 없는데 재산이나 자동차는 물론 성별·연령에까지 보험료를 물리니까 낼 수가 없다. 생계형 체납이다. 체계를 개선하면 체납이 줄어든다. 1조5000억~2조원 정도는 더 걷힐 것이다.”

-처음부터 제대로 했으면 이런 모순이 없었을 것 아닌가.
“세상이 변해서 그렇다. 25년 전과 비교해보면 모든 게 바뀌었다. 가족 구조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저출산·고령화 시대가 왔다. 질병 구조도 만성질환 중심으로 달라졌다. 소득을 얻는 형태도 다 달라졌다. 이런 과거의 기준을 현재에 가져다 억지로 적용하니 문제가 생기고 있는 거다. 바꿔도 벌써 바꿨어야 했다.”

보험료·세금 구분 못하는 정부 문제
-그런데도 정부는 왜 안 하려고 할까.
“겁이 나서 그런 거다. 현실을 잘 모르니까 국민한테 설명을 못한다. 증세 논란이 있지만 부과체계 개편으로 보험료를 더 내는 사람은 소수다. 이들에게 건보의 중요성과 개선의 당위성을 설명해야 하는데 그게 겁이 나는 거다. 합리적으로 설명만 잘해 봐라. 국민이 박수 친다. 개선안을 발표해도 법 고치고 시행령 만드는 데 1년 이상 걸린다. 부족한 게 있으면 시행하면서 고치면 된다. 이 세상에 완벽한 100%가 어디 있나.”

-정부가 증세 논란을 의식하는 것 같다.
“착각이다. 보험료와 세금을 구분 못하고 있다. 세금은 버는 대로 내는 거다. 사회보험은 상부상조다. 조세나 연금의 소득 재분배와 성격이 다른 건강 재분배다. 돈 많고 보험료를 많이 내도 중병에 걸려 병원 이용이 잦으면 내는 것보다 더 많이 쓴다. 반면 적게 내는 사람도 병원에 안 가면 내는 만큼 못 쓴다. 건강한 사람이 덜 건강한 사람을 돕는 구조다. 관료들이 책상에서 개념만 알지 진실이나 팩트를 모른다.”

-문 장관은 추진단 시뮬레이션 자료가 2011년 기준이라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 국세청에 나와 있는 귀속소득 최신치가 2012년 것이다. (자료도 보지 않고) 국민 총소득이 1511조8000억원, 세금 과표가 537조4000억원, 건보 과표가 536조3000억원이다. 그럼 시뮬레이션한 2011년은 얼마냐. 총소득이 1463조5000억원, 세금 과표가 512조6000억원, 건보 과표가 488조7000억원이다. 별 차이가 없다. 이걸 예전 자료라고 하는 것은 국민을 어린애로 보는 거다. 시뮬레이션은 참고 자료다. 1년 전 자료라고 못한다는 건 변명이다.”

-건보체계 개선이 될까.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없다. 봄은 온다. 오지 말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결국 온다.”



김종대 3년 임기의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직을 지난해 11월 14일 퇴임했다. 건강보험에 30여 년을 관여해 ‘Mr.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1977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사무관 시절 건강보험 도입 주무를 맡았다. 의료보험국장(89년) 재직 때는 건보를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했다. 99년 기획관리실장 때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단일화되지 않으면 통합보험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직장·지역 건강보험 통합에 반대하며 사직했다. 건보 역사는 물론 가입자 수, 수입과 지출 규모 등을 연도별로 줄줄 꿰고 있어 직원들이 늘 긴장했다고 한다.

영월=장주영 기자 jy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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