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달러 모은 이 사진 한 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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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턴이 거리에서 찍은 채스터넷 모습. [사진 뉴욕데일리뉴스 웹사이트]

흑인 소년 사진 한 장이 열흘도 안 돼 100만 달러(약 11억원)를 모금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100만 달러의 기적은 범죄율이 높고 저소득층이 밀집한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중학교 교장의 열정에 감동한 시민활동가와 그를 지지하는 뉴욕 공동체가 주인공이다.

 기부 운동은 5년째 뉴요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온 브랜던 스탠턴(31)이 주도했다. 카메라에 빠진 스탠턴은 2010년 3년간의 시카고 채권중개인 생활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건너와 ‘뉴욕 사람들(Humans of New york)’이란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뉴욕 사람들의 이야기와 초상을 담아온 스탠턴은 그 가운데 400여 장을 모아 2013년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지난해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됐다.

 100만 달러의 기적은 거리에서 만난 바이달 채스터넷(13)을 찍은 사진과 인터뷰에서 시작됐다. 뉴욕 브루클린 브라운스빌의 모트 홀 브리지 중학교에 다니는 채스터넷은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가 누구냐”라는 스탠턴의 질문에 “로페스 교장 선생님”이라고 대답했다. 소년은 “선생님은 우리가 잘못했을 때 정학 대신 교장실로 불러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설명해주셨다”며 “우리가 학교생활에 실패할 때마다 교도소 감방이 하나씩 늘어난다는 점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모금을 주도한 시민활동가 브랜던 스탠턴(왼쪽)이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모트 홀 브리지 중학교 나디아 로페스 교장(가운데), 학생인 바이달 채스터넷과 자리를 함께했다. [사진 뉴욕데일리뉴스 웹사이트]

 스탠턴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채스터넷의 사진을 올린 뒤 곧바로 나디아 로페스(37) 교장을 찾아갔다. “우리는 아이들을 학생 대신 ‘학자(scholars)’라고 부른다. 우리 ‘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왕족을 상징하는 보라색을 입는다.” 흑인 제자들에게 긍지를 심어주려는 로페스 교장의 열정에 감동한 스탠턴은 뉴욕 시민사회가 학생들에게 성공의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탠턴은 6학년 학생 70명이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에 다녀오게끔 숙식과 교통비를 지원하는 ‘아이들을 하버드에 보내자’ 모금을 지난 22일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통해 시작했다. 목표액 10만 달러(약 1억1000만원)는 시작 40분 만에 채웠다. 하루 만에 20만 달러가 모아졌다. 29일(현지시간) 현재 104만2820달러가 모금됐을 정도로 뉴요커의 반응은 뜨거웠다.

 기적 같은 모금에는 페이스북에 올린 채스터넷의 인터뷰 사진에 붙은 105만 건이 넘는 ‘좋아요’와 14만 명이 넘는 공유 덕이 컸다. 뉴욕데일리뉴스·CNN 등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모금액과 목적도 확대됐다. 로페스 교장은 하버드 견학 외에도 다른 학년 제자들을 위한 방학 프로그램을 꾸리고 졸업생을 위한 장학금도 조성하기로 했다. 장학기금의 이름은 기적을 만든 소년의 이름을 따 ‘바이달’로 정했다. 첫 장학금의 수혜자 역시 바이달 채스터넷이 선정됐다.

 ‘뉴욕 사람들’을 본뜬 ‘서울 사람들(Humans of Seoul)’은 2013년 12월 페이스북에 개설됐다. 서울 시민들의 이야기는 현재 4만4000여 명이 구독 중이다.

  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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