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대첩비' 고국 품에 안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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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전승을 기념해 세워졌던 북관대첩비가 일본에 빼앗긴 지 100년 만에 우리 땅으로 돌아왔다. 20일 오후 4시2분 대한항공 B747-400편으로 고국의 품에 안겼다. 나무상자에 담긴 대첩비는 공항 도착 후 국군의장대 사열을 거친 뒤 이송차량에 실려 경찰 선도차의 보호 속에 서울 용산 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아래 사진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던 북관대첩비. [사진공동취재단]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긴 기다림에 비하면 너무 짧았다. 20일 오후 4시2분 대한항공 B747-400 여객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1905년 일제 손에 의해 강제로 이 땅을 떠난 지 1세기 만에 한국땅으로 돌아오는 북관대첩비를 싣고 왔다. 오후 1시50분 일본 나리타공항을 출발한 지 2시간12분만이었다. 광복 60돌을 맞은 올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선조의 얼이 서린 비가 우리 품에 안기는 순간이었다.

○…4시13분 활주로를 벗어난 비행기가 9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주변 계류장에선 행사 관계자와 국군의장대가 북관대첩비를 맞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북관대첩비를 올려놓을 가로.세로 3×4m 단상도 만들어졌다. 회색 천에 군청색 레이스를 둘러 단정한 맛을 살렸다.'100년 만의 귀환 북관대첩비'라고 쓴 대형 입간판도 세워졌다.

○…4시28분 드디어 비행기 뒤편 화물칸의 문이 열렸다. 대첩비가 담긴 대형 철제 컨테이너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에 내려진 컨테이너의 천이 올려지자 길이 2m80㎝의 나무상자가 드러났다. 안전 운송을 위해 특수 제작한 상자였다. 겉면에는 '수신:외교통상부 장관(문화재청장), 제목:북관대첩비 송부'라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고국으로 귀환하는 주소였다.

○…잠시 뒤 북관대첩비의 실물 크기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상자에 씌워졌고 비는 태극기를 앞세운 국군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단상으로 옮겨졌다. 유홍준 문화재청장, 인수단으로 일본에 갔던 김원웅 국회의원, 북관대첩비 반환을 위해 애써온 한.일불교복지협회 한국 대표 초산 스님 등 비를 맞이하기 위해 나온 20여 명의 관계자는 감회 어린 눈으로 상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어 있는 북관대첩비를 1978년 처음 발견한 최서면씨는 몸이 불편한 탓에 휠체어를 타고 나왔지만 그 누구보다 감정이 복받치는 듯 숙연한 얼굴이었다. 유홍준 청장은 "민.관은 물론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대첩비를 되찾아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문화재 반환이 아니다. 과거사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남과 북의 협력의 산실이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감격해 했다. 환영객들의 뜨거운 인사를 받은 북관대첩비는 곧바로 예술품 운반용 특수차량에 옮겨져 경찰 선도차의 호송을 받으며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향해 떠났다.

정재숙.강갑생 기자

북관대첩비 귀환 절차

▶ 10월 12일=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 신사 관계자가 북관대첩비 한국 반환을 확인하는 합의문에 서명

▶ 15일=통일부와 문화재청, 민간단체 대표 등 인수단이 북관대첩비 앞에서 고유제 지내고 이송 준비 착수

▶ 16~19일=비석 상태 정밀 점검, 우송을 위한 포장.방역 작업

▶ 20일 오후 4시2분=대한항공 B747-400편으로 인천국제공항 도착,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안착

▶ 21일 오전 10시=국립중앙박물관 나들다리 앞에서 환국 고유제

▶ 22~27일=보존처리

▶ 28일=새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식 행사에서 국민에게 공개

▶ 11월 17일=을사늑약 100주년 기념 환국 기념 행사

북관대첩비는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함경도 경성과 길주에서 당시 정문부 의병장이 왜군을 물리친 승리를 기려 숙종 34년(1707년) 길주군에 세운 전승기념비다. 높이 187㎝, 너비 66㎝에 1500 글자를 새겼다. 1905년 러.일전쟁 때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버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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