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육사졸업생들(232)현지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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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정부의 파병에 대하여 깊은 사의를 표한다』, 『한월 친선 만세』 -.
비둘기부대를 맞는 사이공의 표정은 열광적이기 보다는 차분했다고 한다.
한두개 정도 환영아치가 서 있을줄 알았으나 쉽게 셀수있을 만큼몇개 안되는 플래카드가 항구의 가로수 사이에 걸려 었었던것이다.
사이공 시민들이 외국군대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역사가 없었다고 한다.
주월 한국대사관은 비둘기부대가 사이공에 도착할때 환영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여 줄것을 월남정부에 요청했었으나 작전권문제로 기분이 상했던 일부 군수뇌들은 안전문제를 내세워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한다.
그러나 당시 국방장관이던 「티우」장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나마 초·중·고교생 1천여명이 사이공부두까지 나와 태극기를 흔들어 주었다는것이다.
16일하오3시부터 시작된 비둘기부대환영대회는 「티우」국방장관, 「웨스트모얼랜드」 주월미군사령관,그리고 월남전국 민정대회대표의 환영사순으로 약1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이어 비둘기부대 장병들은 사이공시가를 약15분간 도보행진을 한후 LST가 싣고온 트럭에 분승, 병영지가 있는 디안으로 떠났다.
병사들을 태운 긴 차량 행렬이 사이공을 벗어나 1번국도를 달렸다. 하늘에는 월남군 헬기가 부대이동을 지켜주었다. 사이공에서 디안으로 가는 1번국도는 B지구였다.
월남의 국도는 그위험도에따라A·B·C·D로 구분돼 있었다고한다. A가 안전도가 가장 높은 곳이었다.
사이공시민들과 디안군민들의 비둘기부대장병들에대한 표정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디안군이 위치한 비엔호아성에 차량행렬이 들어서자 환영인파 때문에 부대이동이 어려울 지경이었다고 한다.
연도를 메운 디안군민들은 『따이한 꺼빙, 까몽, 까몽』(한국공병 고맙습니다)을 연발하면서 트럭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우리장병들은 귀에못이 박히도록 들은 「베트콩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말때문에 긴장해 있었다고 했다.
더욱 차량행렬을 벌주게하고 하얀아오자이(월남인특유의 의상)를 입은 아가씨들이 병사들의 목에 꽃다발을걸어줄때는 섬뜩한(?) 기분마저 느꼈다는것이다.
월남여인들이 입는 아오자이는 참매력적인 옷이다. 얇은 적삼으로 만든 원피스가 발끝까지 흘러내리면서 어깨는 찢어져있다. 바지는 맘보형 파자마같이 생겼으며 속옷이 비친다.
월남인들은 월남여인들이 입는 아오자이야말로 여인의 아름다운 육체의 선율을 가장 훌륭히 과시할수 있는옷이라고 자랑하는것을 들은 적이있다.
비둘기부대장병들은 하오6시50분쯤 사이공 서북방22km지점에 자리잡은 주둔지에 도착했다. 보름전에 디안에 도착한 선발대가 준비해둔 텐트에서 야영 첫날밤이 시작되었다.
비둘기부대장병들은 월남군으로부터 대여받은 프리패브(조립식 간이주택) 자재로 막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진지를 구축했다.
비둘기부대가 주둔한 지역은 비엔호아성수도에서 직선거리로 8km, 월남군보병학교가 있는 투덕에서 4km떨어진 곳이다.
비엔호아에는 월남군3군단사령부가 있는등 비교적 안전했지만 게릴라전에서는 마음을 놓을수 없는것이다.
비둘기부대장조문환장군은 부대주변을 빙둘러 호를 파게 했으며 다시 철조망을치고 거기에다 콜라·맥주의 빈깡통들을 매달고 그안에는 다시 지뢰를 묻게했다.
비둘기부대가 진지공사를 끝냈을 때 부대를 방문했던 미군수뇌들은 비둘기부대가 너무 과잉방어상태에 있다고 평가했다지만 비전투부대인 만큼 방어선을 두겹 세겹 굳게 치는것은 당연했다고 본다.
조장군은 항상 부대원들에게 『우리에게는 후퇴할곳이 없다. 적이 공격해 오면 우리는 이곳을 사수해야한다』고 강조했다는 말을 들었다.
비둘기부대는 본진이 도착한지 보름만에 진지구축이며 막사건립등을 거의 끝내고 본연의 임무인 건설공사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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