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산유량 늘리는 까닭은] 유가 안정, 시장 지배력 강화 포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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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최근 고유가에 따른 석유 소비국의 증산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유럽 등 소비국은 OPEC이 생산량을 조절해 고유가를 계속 유지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가져 왔다. 아드난 엘딘 OPEC 사무총장이 19일 OPEC의 회원국별 증산 계획까지 자세하게 열거한 것은 이 같은 소비국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1990년대 이후 러시아 등 비OPEC 국가의 원유 생산 확대로 약화된 OPEC의 시장 지배력을 다시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세계 원유시장이 안정되기 위해선 하루 평균 잉여 생산능력이 300만~400만 배럴은 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 잉여 생산능력은 200만 배럴 안팎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시장이 요동을 칠 수밖에 없다. OPEC이 생산능력을 500만 배럴 늘린다면 유가 안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시장에 대한 OPEC의 지배력도 커진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국 입장에선 이번 회의로 OPEC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개별 국가가 아닌 집단으로 OPEC과 대화 채널을 열었다. 미국도 OPEC에 강한 입김을 불어 넣고 있다. 반면 한국.중국.일본 등은 거대 석유 소비국이면서도 OPEC에 대한 발언권이 약해 유럽.미국보다 높은 가격에 원유를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회의를 계기로 OPEC에 아시아국의 입장을 반영할 채널이 열렸다. 이에 따라 앞으로 아시아국도 원유 도입 협상 때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을 전망이다. OPEC 입장에서도 세계 석유소비의 59%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국가와 대화 채널을 유지하는 게 수요 파악을 위해 필요하다.

최근 고유가의 책임이 석유 생산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OPEC의 입장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다. 엘딘 사무총장이 이날 회의에서 "석유 소비국도 원유를 휘발유나 디젤로 바꾸는 정제시설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최종 석유제품의 가격이 안정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경주=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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