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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세계 줄기세포 허브'시대] 상. 한국은 복제, 미·영은 분화 '글로벌 분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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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무현 대통령이 19일 서울대병원 소아별관에서 열린 '세계 줄기세포 허브' 개소식에 참석해 현판 앞에서 참석자들과 담소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오명 과학기술 부총리, 정운찬 서울대 총장,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노 대통령 내외, 황우석 세계 줄기세포 허브 소장, 이언 윌머트 영국 애든버러대 교수. 김춘식 기자

'세계 줄기세포 허브'의 한국 설치는 세계가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 수준을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황우석 교수의 체세포 복제배아를 비롯한 우수한 줄기세포 기술이 바탕이 됐다. 또 허브 설립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미국.영국 줄기세포 전문가의 공동연구를 촉진해 난치병 극복을 앞당길 가능성도 커졌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민간 차원에서 허브에 접근하고 있지만 우리는 정부가 뒷받침하고 있어 생명공학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커 나갈 가능성을 높였다.

◆ 허브 한국 유치까지=외국의 줄기세포 전문가들은 지난 5월 한국에 허브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과 안규리 교수팀이 환자맞춤형 체세포 핵 이식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선진국의 전문가들은 체세포 핵 이식을 불가능한 일로 여겼었다. 그런 일을 황 교수팀이 해낸 것이 한국에 허브를 설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체세포 핵 이식이란 정자와 난자가 수정해 배아를 만드는 종전의 방식과 달리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체세포를 이식해 배아를 만드는 기술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배양해 신경이나 장기 등의 세포로 분화시켜 환자에게 주입해 난치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영국의 복제 양 돌리 탄생의 주역인 로슬린연구소의 이언 윌머트 박사와 미국 피츠버그 의대 재생의학연구소 제럴드 섀튼 박사가 이번 허브 탄생에 깊이 관여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윌머트와 섀튼 박사는 영국과 미국의 줄기세포 대부로 불린다"면서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 허브를 제의한 이유는 우리가 맞춤형 줄기세포 배양기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체세포 복제 연구에 대한 규제가 느슨한 것도 한국에 허브가 설립된 이유 중 하나다. 섀튼 박사는 "한국은 일반 국민에서 지도층까지 줄기세포에 관심이 많고 사회적 합의도 어느 정도 이뤄져 있어 허브로 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행 생명윤리법은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서 지정하는 난치병 연구 목적으로 체세포 복제 배아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 어떤 일을 하나=허브의 궁극적 목표는 체세포 복제배아를 연구해 신약이나 이식치료 기술을 개발하고 죽은 세포를 재생시켜 인간의 난치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황 교수와 외국 전문가들이 공동 연구를 해오긴 했지만 앞으로는 차원이 달라진다. 세계의 우수 기술을 제도적으로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3국의 줄기세포은행에서 만든 모든 줄기세포는 허브에 등록해 공유한다. 줄기세포를 세계 연구소에 분양하는 등 배분하는 일을 허브가 맡게 된다. 허브는 다른 나라 연구소에서 체세포 복제 배아 분양을 요청하면 내부 심의를 거쳐 나눠줄 예정이다.

또 공동 연구 제의에도 문호를 개방하기로 했다. 서울대 측은 미국의 섀튼 박사를 14일자로 초빙교수로 발령했다. 그는 허브 산하의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한국의 연구원을 영국이나 미국의 줄기세포은행에 파견해 기술을 교류할 예정이다.

서울대 기획조정실 박기호 교수는 "줄기세포 분화기술은 우리보다 미국이나 영국이 낫다"면서 "우리의 체세포 복제배아 기술과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식.김정수 기자

연구원 25명 … 설립 비용 65억원
1년 운영비 30억원

세계 줄기세포 허브는 서울대병원 어린이병동 별관 4층에 마련됐다. 총 312평인 허브는 크게 세 개 부분으로 구분된다.

등록 구역은 환자의 등록.관리가 이뤄지는 곳이다. 접수실과 상담실, 체세포 채취실, 자료보관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또 하나는 연구 구역이다. 이 구역에는 체세포 실험실과 냉장실, 냉동보관실, 연구실 등이 있다. 채취한 체세포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실험부와 이 줄기세포의 분화를 연구하거나 신약을 개발할 연구개발부의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소장실과 연구원실, 행정팀의 사무실 등이 위치한 사무 구역이다.

이번에 센터를 세우는 데 약 65억원이 들었다. 대부분 서울대병원의 예산에서 충당했다. 임정기 서울중앙줄기세포은행장은 "앞으로 인건비를 제외하고도 연간 약 30억원의 운영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특수법인이기 때문에 외부 단체나 기업 등의 기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센터 인력은 지원부까지 합해 약 30여 명이다.

이 가운데 연구인력은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5명을 포함해 약 25명 정도다. 초기 연구는 황 교수가 이미 확보한 줄기세포주 11개로 시작할 예정이다.

김정수 기자

전 세계에서 난자 기증도 받아
실제 임상까진 시간 걸릴 듯

줄기세포의 등록.배양.분양을 하는 세계 줄기세포 허브는 11월부터 연구대상이 되기를 희망하는 환자의 등록을 받을 계획이다.

허브 설립을 주도한 서울대 기획조정실 박기호 교수는 "환자 등록과 관련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 중인데 우선 줄기세포 분화 연구가 비교적 발달한 신경계통 질환 분야가 대상이 될 것"이라며 "척수손상과 파킨슨병 환자를 1차 대상자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루게릭병이나 췌장 인슐린분비세포가 망가진 당뇨환자 등에게로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것이다. 환자 등록은 무료로 할 계획이다.

환자 등록이 되더라도 모두 줄기세포 연구 대상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가운데 연구 조건에 가장 적합한 환자를 가려 허브의 운영위원회 등에서 심의한다. 이후 허브와 서울대병원의 기관윤리위원회(IRB)에서 연구 계획을 승인받아야 비로소 그 환자의 체세포를 채취하게 된다. 그 체세포로 줄기세포를 생성할 때도 다시 한 번 IRB를 거쳐야 한다. 단계마다 환자의 동의는 필수다.

또 체세포 복제와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 난자를 기증받는 일도 허브에서 하게 된다. 박 교수는 "미국이나 영국에 은행 지부가 만들어질 경우 환자의 체세포는 지부에서 채취할 수 있겠지만 난자 기증자는 우리나라로 직접 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자 채취는 줄기세포 생성 계획이 확정된 뒤 이뤄진다.

줄기세포를 임상시험에 임박해 만들 수도 있고 미리 만들어 보관할 수도 있다. 생성된 줄기세포는 감염 여부나 세포 독성검사 등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한 뒤 보관한다. 허브는 세계 각국의 연구자나 연구소와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들에게 줄기세포를 분양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상 시기는 아직 불확실하다. 임정기 서울중앙줄기세포은행장은 "이르면 수년 뒤에 임상시험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실용화되는 것은 5~10년 이후나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도적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예컨대 줄기세포 연구 조건 등을 명시하고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는 난자 채취와 관련된 구체적인 규정이 아직 없다.

김정수 기자<newslady@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한국정부.국민 적극 지원 연구자에 아주 좋은 조건"
미 피츠버그대 섀튼 교수

"미국에선 내가 줄기세포 연구자라는 것을 알아본 사람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적도 있다. 어린 생명(배아) 파괴자라는 것이다."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의 제럴드 섀튼 교수는 19일 서울대 어린이병원 4층의 세계 줄기세포 허브 시설들을 둘러보며 허브가 한국에 세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주(州)마다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법적인 규제나 사회적 합의 정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연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섀튼 교수는 "현재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주에서만 줄기세포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작은 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주마다 다른 규제 내용을 잘 알지 못해 연구 관련 자료를 서로 공유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에 비해 한국은 일반 국민에서 상층 지도부까지 줄기세포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으며 사회적 합의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고 덧붙였다. 섀튼 교수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정부까지 지지해주고 있어 연구자에겐 아주 좋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섀튼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은 줄기세포연구에 관한 한 다른 어느 나라보다 정부의 지원이 적극적이다. 올해부터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법적인 기반도 어느 정도 갖췄다. 난치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한 경우 잔여 배아연구 및 체세포 복제 배아연구가 가능하다.

미국은 2001년 8월 이전에 추출한 줄기세포주 78개의 연구에 대해서만 연방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느 주도 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다. 다만 매사추세츠주가 올해 5월 줄기세포 연구 지원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에선 영국이 배아줄기세포연구에 대한 규제가 가장 느슨한 편이다. 현재 잔여 배아연구 및 체세포 복제 배아연구가 허용돼 있다. 일본은 잔여 배아연구만 허용할 뿐 체세포 복제 배아연구가 금지돼 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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