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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자 줄고 선거 잡음 … 조계종, 죽비 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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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8일 충남 공주에서 열린 조계종 종단혁신을 위한 토론회. 한국 불교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자승 총무원장(오른쪽)이 벽에 붙은 메모장에 적힌 여러 의견을 자신의 노트에 옮겨 쓰고 있다.

불교 조계종이 위기다. 출가자 수는 갈수록 줄고, 종단은 고령화하고 있다. 간판처럼 내세우는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궁리하는 참선법)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어렵다며 고개를 젓는다.

 종단 선거 후에 불거지는 내부의 분열과 다툼은 불교를 더 힘겹게 만든다. 조계종 내부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100년, 200년 후에 과연 종단이 남아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계종이 벼랑 앞에 선 심정으로 28일 충남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종단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를 열었다. 대중공사(大衆公事)는 모든 구성원이 모여 절집의 일을 논의하는 걸 뜻한다. 비구와 비구니, 우바새(남성 재가불자)와 우바이(여성 재가불자)가 모두 참여했다. 총무원장과 교구본사 주지, 사회학자·불교학자 등 외부 전문가까지 대거 모여 종단의 모든 것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였다. 회의에선 ‘사찰 재정 투명화’ ‘수행 승풍 진작’ ‘불교의 사회적 역할’ ‘미래 불교를 위한 포교 전략’ 등 다양한 의제가 쏟아졌다. 종단 역사를 통틀어 이런 자리는 처음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초심으로 돌아가 총무원장이 아닌 종단 구성원으로서 모든 걸 내려놓고, 여러분과 동등한 입장에서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연말까지 9차례 대중공사를 열어 개혁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만큼 위기감이 깊다.

조계종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회의 모습. 종단 내외의 각계 전문가가 참석했다.

 ◆활기 잃어가는 불교=조계종의 출가자가 갈수록 줄고 있다. 2002년에 비하면 2012년 사미(沙彌·불교에 갓 입문한 예비 승려)·사미니(沙彌尼·갓 입문한 여자 예비 승려)의 수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특히 여성 출가자 수는 10년 만에 41%로 줄어들었다.

 더불어 종단 전체는 점점 고령화하고 있다. 대학·대학원 졸업에 사회생활까지 하다가 출가하는 늦깎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조계종 출가 연령은 50세까지다. 출가하면 강원에서 4년간 교육을 받는다. 그래야 비구계를 받는다. 강원 졸업 후 선방에서 3년 정도는 참선 공부를 해야 말사(末寺) 주지라도 맡는 분위기다.

 총무원 기획실장 일감 스님은 “출가 후 약 10년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종단에서 나름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그런데 40대 후반에 출가해 교육을 마치면 50대 후반이 된다. 일을 새로 시작하기에 애매한 나이다”라고 지적했다. 조계종 측은 “세상에서는 40대 대통령이 나오는데 종단 고령화는 큰 문제다. 이번 대중공사를 통해 대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너지는 공동체=조계종은 승가 공동체다. 근래 공동체 의식이 흔들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 세속 못지않은 선거제도가 꼽힌다. 총무원장 선거든, 종회의원이나 본사 주지 선거든 부작용이 작지 않다.

 대중공사에 참여한 한 재가자는 “총무원장 선거에서 승패가 갈린 뒤에도 상대 진영은 재임 기간 내내 총무원장을 공격한다. 그건 여야 어느 쪽에서 총무원장이 되든 마찬가지다. 그런 후유증이 공동체 의식을 무너뜨리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대의원 방식인 현행 선거제도를 아예 직선제로 가든지, 아니면 추대제로 복귀하든지 큰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스타급 선사 부재=조계종은 선(禪)불교를 표방한다. 그럼에도 요즘은 걸출한 스타가 없다. 성철·탄허·청담 선사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스님을 찾기 어려운 시대다. 그만큼 종단의 상징적 구심점이 약해진 상태다. 이날 모임토론에서는 ‘수행 중심의 승풍 진작’이라는 의제가 곳곳에서 제기됐다.

 ◆중국 불교의 위협=급성장하는 중국 불교에 대한 위기감도 크다. 중국은 출가자 수만 25만 명이다. 중국 정부는 불교에 대해 전폭적 지원을 하고 있다. 불교 육성을 통해 세계 불교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한다.

 조계종 총무원 권대식 국제팀장은 “지금까지 중국은 새로 사찰을 짓는 등 불교의 하드웨어 양성에 주력했다. 신자들은 절을 찾아 기도하는 기복신앙 수준이다. 만약 중국이 신도 교육에 눈을 돌리고, 대중 법문을 하는 등 소프트웨어에 힘을 쏟기 시작하면 한국 불교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계종이 내세우는 선(禪)불교 전통이 대부분 중국 조사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제 학술계에서 중국 불교가 “이건 우리 콘텐트야”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대응 논리가 빈약해진다. 원효 대사 등 한국 불교의 고유한 콘텐트에 대한 연구와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공주=글·사진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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