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218. 치려는 마음 집에 놔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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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삼성감독(왼쪽)3차전을 앞두고 고려대 선배인 김경문 두산감독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지난 16일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2차전을 접전 끝에 승리로 이끈 선동열 삼성 감독은 기쁜 소감을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박진만이 주루코치의 제지를 무시하고 홈에 뛰어들다 아웃된 장면이고, 또 하나는 8회 초 2사 2루에서 권오준이 안경현과 풀카운트 승부를 하다 2루타를 맞은 장면이다. 그때 벤치에서는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로 승부하라고 지시했는데 공이 한가운데로 정직하게 들어갔다."

풀카운트에서의 볼 승부. 이건 뭔가. 타자의 '치려는 마음'을 역이용하겠다는 의지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누구나 한방 치고 싶어진다. 그 자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그래서 그 서두르는, 달려드는 태도를 이용하는 투구가 노련한 투구요, 결국 승리하는 투구다. 선 감독이 당시 권오준에게 주문한 것도 바로 그런 거였다.

3차전에서 두산 타자들이 치려는 마음을, 내가 해결하겠다는 마음을 집에 두고 왔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2차전에서 선 감독이 지적한 그런 장면이 세 번이나 나왔는데 세 번 모두 삼성의 의도대로 됐다. 삼성은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두산 타자들의 치려는 마음을 이용해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볼을 던져 범타 또는 헛스윙을 유도했다.

두산의 찬스는 무산되고 삼성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장면이 똑같이 세 번 되풀이됐다. 그리고 거기서 승부가 갈렸다.

첫 번째는 4회 무사 2루에서 김동주 타석. 김동주는 삼성 선발 바르가스를 상대로 투스트라이크까지는 2루 쪽으로 밀어쳐 어떡하든 주자를 3루로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풀카운트가 되고 몸 쪽 낮은 체인지업이 들어왔을 때, 그때는 참지 못했다. 타구는 유격수 땅볼이 됐고, 주자는 2루에 묶였다. 김동주가 참았다면 무사 1, 2루의 찬스가 이어졌겠지만 결과는 1사 2루. 그리고 결국 찬스는 무산됐다.

더 아팠던 두 번째 장면은 6회 1사 1, 3루에서 홍성흔 타석 때. 외야플라이 하나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홍성흔은 볼카운트 2-1에서 파울볼을 하나 걷어낸 뒤 권오준의 몸 쪽 낮은 체인지업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어진 2사 2, 3루 안경현 타석. 안경현도 풀카운트까지 끌고 갔지만 2-3에서 날아온 권오준의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방망이가 헛돌아갔다. 참았더라면 볼, 찬스는 만루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그 '치겠다는 마음'을 이용한 권오준의 투구가 돋보였다.

메이저리그의 전설 샌디 쿠팩스는 "타자를 못 치게 만드는 투수가 뛰어난 투수가 아니라 타자가 치게 만드는 투수가 뛰어난 투수"라고 했다. 달려드는 타자의 마음을 이용할 줄 아는 게 한 단계 위의 투구라는 의미다. 선 감독이 주문한 바로 그 내용이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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