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과 행정간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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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골프장은 현재 교통부외 엄격한(?)감독·통제아래 있다. 건설계획의 승인에서부터 정원·운영·요금에 이르기까지 제반사항이 법규와 교통부의 행정지시로 규제되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행정」은 포장에 불과할 뿐 속사정은 구멍과 모순으로 가득 찬 「행정부재」만 같다. 이같은 사실은 골프장을 둘러싼 그동안의 잡음을 일소하기 위해 교통부·감사원·국세청 등 3개 부처가 5일부터 벌인 골프장 실태 일제조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예상과 풍문이 전혀 빗나간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골프장이 법정 정원을 훨씬 넘어섰고 탈법 (脫法)영업이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심지어 정원을 3배 이상 초과한 일부 골프장은 교통부가 법정 정원을 50% 늘려주면서 회원수를 동결한 올 1월 이후에도 회원권을 계속 판 어처구니없는 사실도 드러났다.
교통부가 회원수·요금까지 관장하는 간섭을 하면서도 회원권 남발을 사전에 감독·저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정원을 늘려주어 골프장의 무질서를 부채질했다.
회원제운영에서 18홀에 1천2백명 회원이 한계숫자라는 것은 골프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이다.
그런데 교통부는 정원을 이미 초과한 기정사실을 추인, 18홀에 무려 6백명을 더 늘려 주었다. 위법이 준법을 이긴 결과다.
1천8백 명이라면 회원이라도 주말에는 골프를 치기 어렵고 회원들의 신청을 받아주려면 경기가 제대로 될 수 없고 잔디나 시설관리도 엉망이 된다. 골프는 어디까지나 취미·스포츠의 일종이다.
외국의 경우 골프장은 건설과 운영, 관리에서 취미·스포츠의 성격에 걸맞게 다양한 수준과 운영방식을 허용하는 자유방임의 체제다.
우리나라처럼 골프장의 제반사항을 정부가 잡아쥐고 엄격한 감독·통제를 하는 곳은 없다.
요금체계만해도 그렇다. 회원수·시설·골프장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책정돼야할 요금이 동일하게 매겨져있다.
정원을 엄격히 지키고 시설이 좋은 골프장의 요금이나 정원의 3∼5배를 마구 모집하고 시설도 엉망인 골프장의 요금을 같게 책정해 놓은 것은 고급레스토랑의 음식값이나 대중음식점의 가격을 똑같이 받도룩 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행정의 간섭과 규제는 대부분의 경우 이처럼 모순을 심화시킨다. 교통부는 심각한 대도시 교통난해소·관광진흥·철도 적자의 해소책 등 할일이 많다. 제대로 감독도 못하면서 일부 계층의 취미·스포츠에 불과한 골프장과 계속 씨름을 할 필요가 있을까.
대중음식값까지 자율화한 이 마당에 골프장만은 시시콜콜한 데까지 간섭을 하는 체제는 재검토되어야한다.
대중화추세에 맞게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골프장을 늘리고 대중골프장은 그 나름대로, 원래가 사교클럽인 회원제골프장은 사교클럽으로서의 특색과 개성을 살려 다양화 해야할 것이다.<문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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