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를 바꿔 경쟁력 키우자] 上. 화물·빈車 정보 공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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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에는 두평 남짓한 주선사 사무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 사무실들의 한쪽 구석에 있는 평상에는 언제나 트럭기사들이 한 무리 앉아서 짐이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소속 주선사가 다른 운송.주선사에 수수료를 떼주고 화물을 넘겨받을 때까지 하루고 이틀이고 차나 평상에서 잠을 자며 대기한다.

트럭 운전사 김모(43)씨는 "우리나라가 IT(정보기술) 강국인 만큼 모든 화물.빈차 정보가 인터넷으로 공유된다면 화물과 빈차가 곧바로 연결될텐데 업체들이 이를 꺼려 이렇게 무작정 기다린다"고 말했다.

김씨의 지적처럼 화물.빈차 정보를 화주.운송사.주선사.차주들이 모두 공유하게 되면 빈차로 돌아가는 트럭이 줄고, 운송 요금.결제 방식도 투명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화물연대의 운송거부에서 터져나온 다단계 알선 등 물류 체계의 후진성을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이미 민간 사업자들이 개발해 놓은 화물 정보 시스템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화물 정보 공유가 해답=울산 SK㈜합성수지 공장은 운송회사 4개를 인터넷 시스템으로 끌어들여 공장의 재고.출하.주문 정보와 연결해 즉각 화물을 반출입하고 있다.

이 운송사들은 울산 지역 내 40여개 또 다른 운송사들과 빈차 정보 풀(SK내트럭 주관)을 운영, 빈차 운행률을 다른 지역보다 20% 정도 낮춰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는 운송료가 유리알처럼 드러나기 때문에 운송료는 알선수수료(운송사 수입)와 실질 운송비(지입차주 수입)로 나눠져 지급되고 있다.

SK내트럭의 조도현 팀장은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화주의 비용 부담이 줄고 차주의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정부는 정보 시스템을 이용해 물류 체계를 효율화하기 위해 1998년 KT를 종합물류망 사업자로 선정하고 정부 예산을 지원해 첨단 물류정보시스템을 만들도록 했다. 이어 SK내트럭이 휴대전화망을 이용한 화물 정보 제공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무빙넷 등 10여개 벤처기업도 인터넷상에서 운송 정보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KT 물류정보시스템의 보급 대수가 수천대에 그치는 등 정보시스템의 활용은 지지부진하다.

낮잠 자는 정보시스템=이미 개발된 화물 정보시스템의 활용이 적은 것은 무엇보다 화주.운송.주선사들이 이를 이용할 경우 세원(稅源)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보가 공개되면 다단계 알선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차주들의 영향력이 약해지게 된다"며 "특히 많은 화주가 화물 운송을 퇴직 임원이나 친지들에게 떼어주는 관행을 갖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운송.주선사들 중에는 인터넷 전용선은 물론 PC 하나 없는 곳이 많아 화물 정보시스템의 활용은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화물정보망 활용 높이려면=업계에서는 현 상황에서 IT시스템 활용을 통해 물류 경쟁력을 높이려면 정부가 할 일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화물 정보시스템을 쓰는 사업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거나▶영세 운송.주선사에 정보시스템 설치.교육을 지원하며▶종합물류망 사업자를 KT로 제한한 규정을 풀어 민간사업자들이 더 폭넓게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렬 기자

<사진설명>

사상 초유의 물류대란 사태가 타결된 15일 화물연대 소속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 근로자들이 파업을 끝내고 현업에 복귀해 쌓여 있던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고 있다.[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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