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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사퇴 후폭풍] 평검사들 왜 반발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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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열린 김종빈 검찰총장 퇴임식에서 대검 간부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총장의 퇴임사를 듣고 있다. 김상선 기자

사상 첫 지휘권 발동 사태와 관련, 일선 검사들이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여권 등을 상대로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내며 반발하고 있다. 아직까지 검찰 간부들의 동반사퇴나 평검사들의 집단반발 등 구체적인 행동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이 밝힌 '개혁'을 통한 '검찰 통제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사태 추이에 따라 정면 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분위기는 "김종빈 검찰총장의 처신이 대단히 부적절했다"며 작심한 듯 비판한 청와대 측의 강경 발언이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윤장석 대검 연구관은 17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정치권이 검사를 무례한 집단으로 싸잡아 욕하면서 불리한 정국을 돌파하고 싶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용주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천 장관에게 보낸 e-메일에서 "검사들이 머지않아 장관님에 대하여도 용퇴하시라는 고언을 하게 될 것"이라며 천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평검사들도 평검사회의 개최를 통해 집단적 의사를 표명할지를 놓고 논의 중이다.

◆ 검사들, 왜 반발하나=검사들의 반발은 지휘권 발동을 비롯, 현 정부의 '검찰개혁' 방향이 '검찰 무력화'와 '검찰 길들이기'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특히 여권이 추진 중인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립, 검.경 수사권 조정, 형사소송법 개정 등 각종 방안들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상당수 검사의 시각이다. 일선 검사들이 천 장관의 이번 지휘권 행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천 장관이 의회민주주의를 크게 훼손했다는 것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국가보안법은 폐해가 많다고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실정법"이라며 "천 장관이 국회에서 보안법 폐지 또는 개정 절차가 없었는데도 불구속 수사 지시를 내린 것은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천 장관은 입법의 전권이 있는 양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둘째,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개별 사건의 구속.불구속 여부를 놓고 지휘권을 행사할 정도라면 앞으로 검찰 수사에서 집권당 의도에 따라 지휘권 발동이 남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상진 변호사는 "검찰은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국민적 신뢰가 없으면 존재 의의가 없다"며 "천 장관이 지휘권 발동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잠복 상태의 집단 반발"=검찰의 반발 분위기가 항명 사태로 발전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검찰 내부에서 조직안정을 모색할 때라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현재 정상명 대검 차장 등 검찰 수뇌부도 일선 검사들의 집단반발을 막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진정돼도 갈등이 언제든 재발할 여지가 많다. 청와대 등이 후임 총장 인선을 통해 인적 쇄신을 시도하거나, 공수처에 기소권을 줌으로써 검찰 권한의 축소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강정구 교수 등의 공안 사건에서 구속 및 기소 여부를 놓고도 언제든 재격돌할 수 있다.

하재식 기자 <angelha@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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