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멀리서|법과 사는 인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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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법과함께 살아가게된다(mitleben). 그러면서도 법과 함께 산다는사실을 모르는 수가 많다. 사랑속에도 법은 공존하며, 미움속에도 법은 밀착되어 있다. 뱃속의 태아도 법의 영향을 받으며, 자동차에 치여 고통스럽게 외친 『아이구머니!』라는 외마디 소리에도 법적 의미가 당겨져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직 법과 함께 산다는 생각을 실감나게 느끼지 못하는 것같다. 서양사람들은 변호사와 의사를 정하고 산다고 한다.
그들은 법과 함께 산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며, 병과 더불어 함께 산다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칸트는 법의 세계는 가치의 세계요, 여타의 세계는 사실의 세계라해서 양자를 엄격히 구별하였다. 「켈젠」의 순수법학의 이론에서는 가치와 사실에 대응해서 존재 (Sein)와 당위 (Sollen) 를 구별하였지만, 한국인은 가치와 사실, 당위와 존재, 규범과 필연등의 구별을 잘못하는 것같다. 법과 사실과의 한계가 애매하고 규범세계에 있어서도 법과 도덕과의 구별이 애매한 것같다.
어디까지가 법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따지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또 그런 걸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디까지가 도덕이요, 어디서부터 법으로 따질 것인지 애매한 채로 얼버무리기를 좋아한다. 그저 인정으로 해결하며 가족주의적으로 둥글둥글하게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 여겨진다.
8·15해방과 더불어 우리나라는 민족과 사회를 되찾아 1948년8월15일 독립국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그러나 8·15해방이후 독립국가의 탄생전까지의 혼란, 6·25동란의 참극,4·19전까지의 부정투표를 규탄하는 데모대의 물결, 5·16이후에도 6·3데모를 비롯한 대학생들의 사회참여등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여러사건을 더듬어볼때 사회질서는 어떠해야 하는 것임을 생각나게 한다.
국가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지배층은 사사건건 시끄럽게 말썽만 부리는 백성은 없는 것이 오히려 좋겠다고 생각하려는지 모른다. 한편 개인의 자유를 극단으로 원하는 백성들은 행동을 구속하는 국가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가 망상이 아닐 수 없다. 국가사회에는 국민의 생명·재산과 자기발전의 안정을 추구하는 법질서가 있으며, 이 법질서는 국가의 힘에 의하기보다는 자율적으로 지켜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함은 물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사이에는 언제나 공감대로 이어져 있어야만 한다.
우리사회는 최근에 산업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생활양식이 너무나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일제식민지통제, 8·15 해방과 6·25동란을 지나면서 조선왕조의 유교적 정치체제가 붕괴되고 새로운 서구산업사회에서 통용되는 제반문물제도가 모든 생활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가치관의 충돌이 빚어지고있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전근대적 성격의 요인으로서 들수있는것은 대체로 전통성, 권위주의,정실주의, 정치적 무관심, 지배층의 무능력으로 인한 파벌성, 지식층의 독선과 고답성, 형식주의와 허례성, 농민들의 체념적 예속성 등을 열거할수 있을것같다. 확실히 이러한 요인들은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적안정과 근대적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과 균형있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교육, 특히 고등교육의 보급과 발전, 서구적 사상 내지 풍조의 유행, 공업화와 도시의 발달등으로 말미암아 종래의 의식구조가 점차 변모해 가고 있음은 아무도 부인할수 없을것이다.
사회가 진화하면 국민의 사회생활은 자연히 복잡해지고, 이를 규율하는 법률이 무수히 제정, 시행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국민 각자가 어떤 법률이 언제부터 시행되고 있는지를 일일이 찾아내어 이를 준수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법이란 반드시 건전한상식과 일치하는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건전한 상식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우리국민 누구나가 건전한 상식에 좇아 행위를 하는 정신을 기른다면 이것이 곧 준법정신의 함양이라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우리국민은 누구나 다같이 준법정신을 함양하고 타인의 불법은 불용한다는 자세를 취하여 조그마한 반사회적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 가치체계의 수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각기 의식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하여 준법을 소질화하고, 생활화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법의 생활화운동은 결코 구호로써만 그 목적을 달성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가 준법의 가치밑에 굳게뭉쳐 각자의 의식구조를 하루바삐 전환해서 누구나 준법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생활환경을 조성하는데 진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사회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솔선해서 법의 생활화운동에 앞장서야 함을 강조하는 바이다.

<사진>서돈각/전 경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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