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재앙 부른 '자연 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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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한 눈은 초점을 잃었고,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다. 자신이 신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여길 따름이다.

지진 자체가 그의 탓일 리는 없다.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한 리히터 규모 7.6의 강진이 대규모 참사를 몰고 왔을 뿐이다. 그러나 희생자 수가 4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커진 데에는 자연을 무시한 인간의 어리석음도 한 몫 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피해가 집중된 카슈미르 지방은 해발 2000m 이상의 험준한 산악지대다. 50~70도 경사의 산비탈은 거의 직벽에 가깝다.

주민들은 이런 곳에 기둥을 박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집의 한쪽은 절벽 비탈에 걸쳐 있고, 또 다른 한쪽은 집 아래쪽 절벽에 박힌 기둥 위에 얹혀 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절벽 집들은 이번 지진으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냥 무너진 것이 아니라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피해 주민들의 생존율이 극히 낮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절벽에 집을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집 지을 땅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곳을 떠날 수도 없다. 도시로 나가 봐야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또 산비탈을 밭으로 개간하고 가축을 풀어 풀을 뜯어 먹였다. 숲에서 채취한 잡목은 땔감으로 사용했다.

발가벗겨진 산은 지진에 흔들리자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만세라와 발라코트의 학교에서 공부하던 수백 명의 어린 학생을 삼켜버린 것도 바로 이 산사태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대재앙은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잇따르고 있는 지구촌의 대규모 자연재해는 그 이유와 배경이 무엇이든 더 이상 자연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신의 준엄한 경고인지 모른다.

천인성 사건사회부 기자 <무자파라바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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