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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노동계,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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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배임수재 혐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는 임기를 단축하고 내년 초 조기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이번의 비리사태는 노동계의 최상층에 이르기까지 부패가 번졌다는 것을 의미하여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민주노총은 권위주의적 정권의 강압적인 노동정책에 항의하고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시작하여 그간 갖은 고초를 겪으며 오늘에 이른 조직이다.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과격성이나 급진성을 염려하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민주노총의 순수성과 선명성을 의심하는 시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불과 수년 사이에 일부 민주노총 조직에 대한 이미지는 불우한 노동자들을 보호하던 조직에서 대기업과 공기업의 고소득 근로자들의 이해관계를 주로 대변하는 집단으로 바뀌고 있고, 자신을 희생하며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민주투사의 모습에서 개인의 치부를 위하여 부패구조에 영합하는 일그러진 영웅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노동계 지도부의 부패상이 지난봄의 폭력사태와 더불어 노동운동에 대한 여론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노사 간의 세력균형이 중요하다. 사용자가 너무 강하면 효율성만이 강조되어 고용이 불안해지고 빈부격차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노조가 너무 강해지면 공평성만을 추구하여 영국병 같은 비효율성을 낳게 된다.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1%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만약 여론의 악화가 노동운동이 더욱 약해지고 고립되는 계기가 된다면 이는 사회 전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노동계의 위기에 대응하여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에 두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여론을 중시하는 노동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노동운동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보수적인 계층은 물론 비정규직들이나 영세민들도 더 이상 노동계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노조의 도움이 필요한 비정규직 등의 소외계층보다는 기득권 계층을 옹호하는 조직으로 비치는 것이다. 기업은 봉급을 주고 일을 시키므로 구성원인 근로자의 여론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성패는 평조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바탕하므로 여론의 동향이 극히 중요하며, 따라서 노동운동은 '여론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로 비유되곤 한다. 바다에 풍랑이 심하면 실제로 배는 침몰하는 법이다. 노동사를 보면 시민의 여론과 동떨어진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조합은 단명한 경우가 많았다. 여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득권을 가진 소수보다는 소외된 다수를 대변하는 노동운동이 바람직하다.

둘째, 이번 기회를 환골탈태의 기회로 삼아 노동계 스스로 자정노력을 하여야 한다. 노동조합은 부패와 탈법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부분 노조 규약에 의하여 내부감사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감사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어 일부 노동조합의 경우 부패가 만연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노조의 이러한 일탈행위가 보고되는 횟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부패 관행을 근절하기 위하여 외부회계감사를 의무화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즉 조합원 수나 예산이 큰 노동조합이나 상급단체는 스스로 지정하는 외부 공인회계사로부터 회계감사를 받도록 하는 방안이다. 회계감사는 노동계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상징적 효과와 초기단계의 부패를 막는 실질적 효과를 동시에 거둘 것이다. 단, 노조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이러한 제도들은 법으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노조가 자체 규약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동계의 부패로 인한 현재의 위기는 투명성 확보를 위한 획기적인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노동계의 과감한 결단을 촉구한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