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울지 않아, 언니·오빠가 있잖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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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니안짱
야스모토 스에코 글, 조영경 옮김
산하, 236쪽, 8500원

열살 소녀 스에코가 1953~54년 쓴 일기인 '니안짱'은 "9월 21일 밤 나는 죽었다"로 시작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를 생각나게 한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굶주림에 죽어가야 했던 '반딧불의 묘'의 남매가 스에코의 4남매 이야기에 그대로 중첩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린 4남매만 남기고 간 스에코의 부모는 전라남도 보성 출신의 한국인. 재일동포 고아였던 이들이 겪은 고난은 상상 이상이다. 큰 오빠는 탄광에서 일하고, 언니는 남의 집살이를 하고, 작은 오빠와 스에코는 이웃집에 맡겨진다.

그러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만이 이 책의 '무기'는 아니다. "4학년은 다니지 마"라던 큰 오빠가 교과섯값을 쥐여주자 '어디서 돈이 났을까?'만 궁금해 하며 필통 속에 넣는 스에코. 고단한 현실에서 살짝 한걸음 물러서 있는 막내 동생의 순진함이 곳곳에 묻어나며 오히려 애잔한 감정이 밀려오게 만든다. 이 일기는 일본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가 영화로도 만들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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