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의 대화단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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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대를 대화단절의 시대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대화의 단절이 가정의 중심인 부부사이에 일어나는 현상이 되고 보면 그 가정은 심각한 위기에 부닥칠 수가 있다.
『남편과 조용히 마주앉아 이야기 나눌 시간이 전혀 없어요.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일요일조차 집에 머무르는 일이 드물거든요.』
주부들 가운데 이 같은 호소를 하는 사람이 상당수에 이른다. 낚시과부나 등산과부 등으로 불리는 주부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현대가정의 문제점으로 부부간 대화단절을 꼽는 사회학자도 많다.
생명의 전화 시민공개 토론회에서도 부부 당사자들이 나와 대화의 단절이 가정의 황폐화를 초래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대화의 단절은 부부 공동취미나 공동관심사를 많이 만드는 방법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권고.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춘 사회단체들의 활동도 눈에 뜨인다.
한국에서 77년에 시작된 부부일치모임은 부부대화의 장을 마련해주는 곳.
지금까지 4천5백쌍의 부부가 마음을 터놓고 새로운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 매리지 인카운터 전국대표인 오재호(47·극작가) 김봉자(44)씨 부부는 ME운동을 통해 우리나라 부부사이에 그 동안 얼마나 대화가 부족했던가를 실감했다고 말한다. 2박3일의 운동기간동안 부부는 많이도 변모한다.
지도신부와 지도부부에 의해 인도되는 참가부부는 경우에 따라 각각 방법은 다르지만 우선 대화를 틀 수 있도록 유도된다. 어느 부부의 경우 부둥켜안고 한참 운 후에 봇물 터진 듯한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고.
부부간에 대학가 없는 것은 두사람의 관심사가 각기 다른데 있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풀이한다.
따라서 공동의 취미나 관심사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부부의 공동취미를 권장하기 위해 YMCA 체육관에서도 지난 6월부터 1주일에 3일씩 주부체조교실을 열고 있다.
몸푸는 운동에서 시작`신체적성운동 짝체조· 포크댄스의 순서로 진행되는 부부체조 교실엔 지금까지 20여쌍이 등록, 하루 평균 6, 7쌍의 부부가 나와 함께 체조를 한다.
첫회부터 부부체조교실에 참가한 김원곤(39·사업) 정춘희(39)씨부부는 우선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져 좋다고 했다. 또 서로의 몸을 유연성있게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가운데 전에 없던 즐거움이 느껴지더라고.
운동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져 최근에는 운동경기장에도 함께 열심히 찾아 다닌다.
정씨는 부부간에 소원한 느낌이 들 때는 같은 취미를 가져보라고 권한다.
『아이를 워낙 좋아해 유치원 보모를 했읍니다. 그러다 결혼, 두 아들을 낳고 그들이 이제 모두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아이 키우는 재미도 없어지고 나니 삶의 의미도 없어지는 것 같았읍니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즐겁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신혼시절을 돌이켜보았읍니다. 그 시절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하고요. 그때 생각해 낸 것이 편지였어요.』
결혼한지 19년이 된 김혜순씨 (40)는 자녀를 키우는 동안 남편과의 거리가 상당히 멀어졌다는것을 실감했다고 밝힌다. 그래서 지난해 어느날 남편의 직장으로 1주일에 한번씩 편지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편지작전은 의외의 효과를 가져와 부부 사이에 상당한 관심도가 생기고 지난해 연말에는 남편으로부터 긴 사연이 담긴 연하장까지 받게 되었다.
연하장뿐만 아니라 드물긴 해도 가끔 남편이 집으로 편지를 보내주기도 한다.
김씨는 그 이후 친구들에게 곧잘 『남편에게 편지 쓰라』 는 권고를 해왔다.
편지야말로 부부사이를 원만하게하는 도구며 서로의 생활에 활력을 주는 역할까지 한다고 그는 믿고 있다.
지난 1년동안 김씨는 한번도, 거르지 않고 1주일에 한번씩 남편에게 꼭 편지를 써왔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편지 내왕이 있은 후 프로야구등 공동의 취미도 생겨 이젠 청주까지 원정하며 야구를 구경하는 대단한 부부 야구팬이 되기도 했다.
이것이야말로 신혼시절을 되돌려 받은 것이라고 김씨는 믿고 있다.
자칫 불행한 결과를 낳기 쉬운 부부간의 소원감이나 대화의 단절은 이처럼 공동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
현대는 심각한 대화의 단절만큼이나 이를 해소할 취미의 분야도 다양하다.
아내는 먼저 다정한 문구가 든 한장의 편지를 남편에게 띄워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김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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