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주세요” … 손바닥 대니 5초 안에 은행 계좌서 결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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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01면

매회 최첨단 무기기술을 선보여 왔던 007시리즈. 2013년 개봉한 007 스카이폴에서 제임스 본드의 총은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도록 설계됐다. 첨단장비 부서는 총에 센서를 장착해 본드의 지문을 인식하는 ‘인증’작업을 거쳐야만 총이 작동되도록 만들었다. 영화 아이언맨3에서 주인공 토니스타크는 아이언맨 슈트를 주섬주섬 챙겨 입지 않는다. 주인의 음성·몸짓을 인식한 슈트가 1300㎞ 밖에서 날아와 팔·다리·얼굴에 장착된다. 이 두 가지 장면에는 미래를 이끌어 갈 첨단 과학기술이 숨어 있다. 지문·목소리처럼 개인의 고유한 신체 정보를 읽어내는 바이오인식 기술(Biometrics)이다. 기존의 열쇠·암호·신분증을 대체하는 인증 수단으로 주목받으며 기술개발과 상용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인체가 곧 열쇠’ 바이오인식 기술 상용화 가속도

사람 홍채 같을 확률 20억분의 1
지난해 4월, 스웨덴 룬드대학교 구내식당의 결제시스템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커피·샌드위치 등을 들고 결제대로 향한 학생들이 꺼내는 것은 현금도 카드도 아닌 ‘손바닥’이다. 지갑이 어디 있는지 헤매거나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당황할 필요가 없다. 결제기에 손바닥을 접촉하는 것만으로 결제가 끝난다. 적외선 센서가 손바닥의 혈관 패턴을 인식하고, 사전에 연동한 은행 계좌로 결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초가 채 안 된다. 상품을 구매할 때 사람의 정맥 정보로 인증을 대신하는 시스템이 처음 쓰인 현장이다. 스웨덴 벤처기업 퀵스터사가 구축한 이 시스템은 유럽의 일부 마트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다.

 바이오인식 기술은 고유한 신체 정보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입힌 융·복합 산물이다. 지문·홍채·망막·얼굴·정맥·목소리 같은 신체 특징뿐 아니라 자판 입력·걸음걸이 같은 행동 특징도 본인을 인증하는 수단이 된다.

 바이오인식 기술이 미래 기술로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먼저 도난·분실 위험이 거의 없는 확실한 본인 인증 수단이란 점이다. 개인의 고유한 패턴이므로 복제·위조도 어렵다. 예를 들어 홍채는 약 260여 개의 특징으로 식별하는데 동일 홍채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20억분의 1이다. 업계에서는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 이상의 바이오인식 기술을 통합시키는 다중 바이오인식 기술을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지문 인식하는 신용카드 선보여
그동안 근태·보안구역 통제에 사용하던 바이오인식 기술의 연구개발과 상용화에 불을 지핀 건 전자상거래·금융 분야다. 현재의 비밀번호 입력을 통한 지불 결제 방식을 대체할 기세다. 애플은 아이폰5s에 지문인식 센서로 잠금을 해제하는 Touch ID를 탑재하더니 지난 9월 발표한 아이폰6에서 애플페이(Apple Pay)라는 결제수단으로 기능을 확장했다. 애플은 아멕스·마스터카드·비자 등 신용카드 업체와 씨티그룹·뱅크오브아메리카 같은 대형 은행과 애플페이 활용 제휴를 맺었다. 모바일 지갑 성장과 함께 2016년 총거래액은 2000억 달러(약 220조4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 그룹의 결제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알리페이도 삼성·애플·화웨이 같은 스마트폰 업체와 손잡고 지문인식 기반의 지불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알리페이는 지난해 “지문·손금·음성·자판입력·필기체·얼굴 등 여섯 가지 바이오인식 방식이 미래 지불 결제 기술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인체특징·행동습관의 빅데이터를 해독하는 지불 방식은 도난·위조 걱정이 없다는 이유다. 알리페이는 알리바바의 현금제조기로 불린다. 구매자와 판매자 중간에서 결제대금을 임시로 보관했다가 거래가 끝나면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중개 역할을 한다.

 마스터카드는 노르웨이 바이오인식 기술 전문업체인 지와이프와 함께 서명·비밀번호 대신 지문 인식을 기반한 신용카드를 발표했다. 브라질의 브라데스코 은행은 3만4000여 대 이상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후지쓰의 손바닥 정맥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불 결제에 활용하는 수단은 얼굴 인식(핀란드의 유니클사), 손동작 인식(미국 시크릿 핸드셰이크사) 등 다양하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예방책 필요
바이오인식 기술을 금융·결제에서 본인 인증 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 기술은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자연스럽게 식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체온·땀·뇌파·시선·DNA 같은 바이오 정보를 인식하는 기술은 마케팅·안전운전시스템·질병의 진단과 예방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차세대 바이오인식 기술이 암호·신분증을 대체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상용화하려면 바이오 정보를 수집·저장·처리·폐기하는 과정에서 보안·인증 기능을 강화하는 표준 솔루션이 관건이다. 바이오인식 기술의 기반은 축적된 정보다. 지문·홍채로 인증하는 방법은 간편하지만 유출될 경우 초기화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한번 도난당하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대규모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악용하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바이오인식 기술은 철학적 고민이 함께 필요한 분야기도 하다. 영화 ‘가타카’는 바이오인식 기술의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우수한 유전인자가 신분계급을 결정하는 사회다. 출생 시 한 방울의 혈액으로 DNA를 분석해 성격·지능·질병 확률을 예측한다. 바이오 정보는 데이터베이스화되고 DNA 정보에 따라 ‘인간 등급’ 점수가 매겨진다. 현재 인도에서는 전 국민의 홍채·지문을 수집해 바이오인식 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신원으로 ‘디지털 인도 프로젝트’의 길을 열겠다는 계획이다. 인도 정부는 은행 계좌를 바이오인식 카드번호와 연계하고, 투표소에 생체검사 기계를 설치해 중복·불법 투표를 막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감시 사회인 ‘빅브라더’ 논쟁이 터져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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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기자 t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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