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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방주가 만난 사람] “새로운 유산균 기능 찾으려고 20여 년간 대변 분석했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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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06면

서울여대 이연희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배양한 유산균을 들고 유산균의 효과와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동연 객원기자

서울여대 이연희(56· 미생물학) 교수는 억척스럽다. 연구나 정부 사업을 맡아 할 때 이 교수를 볼 때면 그런 이미지부터 먼저 떠오른다. 여성으로 세 자녀를 키우면서도 세계적인 유산균의 대가가 됐고, 국내 여성과학계에서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해서다. 또 연구결과를 산업화해 기술료를 많이 받아 부자가 됐다. 이래저래 그에게는 ‘억척’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유산균 박사’ 이연희 서울여대 교수

 그가 찾아내거나 기능을 밝혀낸 유산균 관련 특허만 해도 20여 가지가 된다. 인체 관련 유산균을 연구하려면 첫 단계가 대변부터 받아야 한다. 유산균이라는 놈이 주로 장이나 위에 서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산균을 다루는 일은 몸에 좋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래도 그는 20여 년을 유산균과 씨름해 이제는 그에게 ‘유산균 박사’라는 별칭이 훈장이 됐다.

특허 20여 가지 보유 … 부·명예 얻어
그가 발견한 유산균과 기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산 장수 유산균(PL9988) 발견’ ‘체지방과 여드름 잡는 유산균 기능 규명’ ‘죽은 유산균도 효과 있다’ ‘장뿐 아니라 위에서도 유산균 작용’ 등이 대표적인 업적이다. 한국산 장수 유산균을 찾을 때다. 2012년 6개월 동안 장수마을로 불리는 전남 구례군 등지의 100세 전후 노인들을 만나며 유산균을 채집했다. 거기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장수 유산균’인 프로바이오틱(PL9988)을 찾아냈다.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자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100세 전후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 내용을 설명하고, 일일이 대변을 수거해 연구한 결과 장수 유산균을 찾아냈다. 그 유산균은 현재 한 유제품 업체의 히트 상품인 요구르트에 들어가고 있다.

 죽은 유산균도 효과가 크다는 사실은 그가 처음으로 밝혀냈다. 유산균은 병원균이 붙는 장 점막 위치에 달라붙는다. 따라서 유산균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하면 병원균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런 사실도 역시 그의 연구 결과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유제품 회사가 유산균의 기능을 밝혀주면 연구비를 주겠다고 했다. 그는 밤을 새워 유산균이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이후 회사는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유산균을 출시해 대박을 쳤다. 이 교수에게는 당시 100원짜리 요구르트가 한 달간 무료로 배달됐을 뿐이다. 그에게 지적재산권이나 기술료 등의 개념이 제대로 없었을 때라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유산균을 연구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이뿐이 아니다. 그가 유산균이 장뿐 아니라 위에서도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당시 대부분의 국내 학자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유산균은 장에서만 활동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이제 그의 유산균 관련 연구내용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연구한 유산균은 그에게 부를 안겨줬다. 새로운 기능의 유산균을 개발해 여러 차례 산업체에 기술을 이전했다. 차도 최고급 승용차다. 사실 20여 년간 연구자들을 접한 필자는 그들이 남부럽지 않게 부와 명예를 갖길 바란다. 그래야 우수한 인재들이 과학계로 몰려올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박봉에 고되게 연구하는 직업이라면 우수 인재들이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은 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수는 이공계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의 본보기로 제격이다.

신기능 유산균 시장 개척에 기여
이 교수는 유산균 대가로서 부와 명예를 얻기도 했지만 국가적으로는 신기능 유산균 시장을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연구결과가 연구실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바로 시장으로 연결되는 실증 모델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연구 이외에 국가사업을 하고 있다. 연구소재은행이 그것이다. 연구자들은 저마다 연구를 하면서 모은 각종 연구 재료들이 있다. 이 재료는 연구자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자산이다. 그러나 은퇴하거나 관리비가 없으면 버려지기 일쑤다. 이 교수는 국가적으로 연구소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도록 체제를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그는 연구소재중앙센터장을 맡고 있다. 연구소재은행은 인체·식물·동물·미생물 등 분야별로 현재 36개가 있으며, 각종 연구재료를 관리하고 분양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항생제가 잘 안 듣는 수퍼박테리아 같은 항생제 내성균주를 항생제 연구자에게 분양해 항생제 약효를 시험하게 한다든가, 바퀴벌레나 집진드기를 사육해 퇴치법 연구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암세포는 항암제 효능시험에 필수적인 연구소재다. 중요한 암세포는 외국에서도 잘 팔지 않는다. 한국세포주은행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암세포주가 120여 종이나 있으며, 항생제 내성균주는 수퍼박테리아 100여 종을 비롯한 1만2000여 종의 박테리아가 수집·보관돼 있다. 연구자들은 오염되지 않은 질 좋은 연구소재를 은행으로부터 분양받아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이 교수는 연구자별로 관리되던 연구용 소재들을 중앙관리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2000년부터 중앙부처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는 숫기가 별로 없던 말 그대로 얌전한 여교수였는데 어떻게 그런 억척을 부리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술회했다. 숫기가 없었던 것은 여자만 다니는 가톨릭계 초등학교에서부터 여중·여고까지 여학교만을 다녀서라고 그는 말한다. 그 결과 지금은 우리나라가 각국에서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로 연구소재은행 관리체제가 잘 갖춰진 모범국가로 꼽히게 됐다. 아시아 14개국 97개 기관이 참여하는 아시아연구소재은행네트워크는 2009년 그가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아시아 14개국 참여 연구소재은행 창립
옛 과학기술부(현 미래창조부)에서 1995년 연구소재은행을 시작한 이래 5~10년 전부터 각 부처에서 제각각의 방법으로 생물소재은행을 설립해 지원하고 있다. 그는 이를 총괄 관리하는 체제를 시급히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구소재는 관리하는 기준이나 방법 등이 국제기준에 맞아야 산업체나 연구자들이 믿고 쓸 수 있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 교수는 미국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0년 서울여대 교수로 부임했다. 당시는 국가연구비가 많지 않을 때였다. 가난한 나라의 연구자로서 자녀 양육과 연구자의 일을 병행하는 여교수로서 겪은 일도 많았다. 교수 부임 초기에는 연구비가 없어 모교 연구실에서 버린 유리기구를 주워 와 끓이고 소독해 재활용했다. 선배 교수의 연구과제에 끼어들어 ‘객식구’ 노릇도 했다. 교수 부임 이후 낳은 셋째 아이가 아플 때는 들쳐 업고 울기도 했고, 아침에는 보모가 혹시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한 분야의 대가가 되고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가사와 일을 병행하기 어려운 요즘 그의 성공은 경력 단절 여성들에게 많은 용기를 줄 것이다.



이연희 교수
-서울대 학사, 미국 UCLA 생화학 박사
-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현)
-연구소재중앙센터장(현)
-산업포장·과학포장·
로레알유네스코여성생명과학상·
올해의여성과학자상 수상



박방주 교수=중앙일보에서 20여 년간 과학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2009~2012년 한국과학기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가천대 전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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