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들의 작은 실천, 멈춘 채 뒤 돌아보는 여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1호 06면

개인이 겪게 되는 대표적 공공소통 중 하나가 걷는 것이다. 집을 나서는 것은 군중 속으로의 진입이다. 그 순간부터 타인을 경계하며 경쟁적으로 남을 앞지르는 데 익숙해져 있다. 타인은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뒷사람과 주변에 대한 배려는 기대하기 힘들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이 대도시 파리의 아케이드를 소재로 근대화의 근원적 문제로 지적한 집단 내 무의식과 같다. 이는 ‘모순되는 이익’, 즉 자기 이익에 집착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소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 영역에서 만나게 되는 익명의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과 같은 존재가 된다. 사회 구성원이라는 기본적 관계를 기대할 수도 없다.

우리가 매일 걷는 일상 속에서 몰인간성을 느껴본 적은 없는가. 프랑스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Frederic Gros)는 길을 걸으며 얻어야 할 느림의 교훈을 강조했다. 느림은 소통의 시작, 관계 복원을 위한 멈춤의 조건이다. 공공소통이 소멸한 사회는 몰인간성에 직면한다. 몰인간성은 자신의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과 같다.

1950년대 중반 산업화 과정과 획일화된 사회에 반항적 경향을 보였던 청년 문학가, 예술가를 통칭했던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을 떠올려보자. 인간성의 상실에 좌절하며 끊임없이 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지금 우리는 연일 터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사건과 사고, 가족애의 상실, 세대 간 갈등 속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며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가. 그 시작은 주변 바라보기와 작은 대화의 시작이다.

걷는다는 것은 앞이 아닌 주변과 소통하는 과정이다. 공공 문제를 목격하며 공공소통을 실천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다. 작은 외침 LOUD 프로젝트는 바로 인간성 회복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위한 공공소통을 시도해 보았다.

무표정한 군중 속에서 이러한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 공공장소의 출입구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치며 교류하는 곳이다. 관계 복원을 위해 익명의 군중 속 표정 찾아주기 프로젝트가 문 잡아주기다. 문을 잡아주는 작은 행위는 앞이 아닌 뒷사람을 위한 배려이며 우리 사회 긍정 에너지를 넘치게 하는 감성회복 프로젝트다. 누가 오고 있는지 바라보며 주변의 정황을 되새김할 수 있는 느림의 철학을 가능케 해준다. 지금까지 우리는 앞만 보며 빨리 달려왔기에 더욱 꼭 잡고 놓칠 수 없는 작은 실천이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중앙SUNDAY 콜라보레이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