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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5인의 지성에게 길을 묻다] 섣불리 뜯어고치지 말고 교육현장부터 파악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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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12면

조한혜정 명예교수는 학교 운영의 자율을 확대하고 가정에서는 아이와 적극 소통하면서 협동적인 자아감을 심어주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정동 기자

조희연(59) 서울시 교육감이 대학 은사인 조한혜정(67) 연세대 명예교수에게 서울 교육의 방향을 물었다. 조한 교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즘 석학이자 문화인류학자다. 2000년대 청소년 직업 체험센터인 ‘하자센터’를 설립해 이끌어오고 있다.

③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2013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뒤 지난해 말 『자공공-우정과 환대의 마을살이』를 출간했다. 조 교육감은 연세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던 당시 조한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조한 교수는 제자에게 협동적인 아이들을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는 자신만이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들, 교실 대신 화장실에서만 대화하는 청소년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찾아오는 고난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희연 교육감=지난해 6·4 지방선거 이후 전국 시·도 교육감에게 ‘섣불리 무리해서 수술하려 들지 말라’고 당부한 칼럼을 쓰신 것을 봤습니다.

▶조한혜정 명예교수=능력이 없으면 뜯어고치지 말라고 말한 겁니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 때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당시로선 필요할법한 정책을 썼죠. 하지만 그땐 정작 하나만 잘한다고 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결국 그 정책은 실패했죠. 톱다운(Top-down·상의하달식)으로 무언가를 할 때는 아래에서 준비가 잘됐는지 바텀(Bottom)을 확실하게 보고 가야 합니다.

▶조희연=현장에서 공감받는 새로운 교육실험을 주목하고, 이를 일반화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한혜정=자율성을 얼마만큼 줄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학교를 작게 하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보통 전교생이 120명 정도면 좋다고 합니다.

▶조희연=현재 추진하는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이 바로 학교 통폐합입니다. 서울 중구나 종로구는 도시공동화 현상 때문에 학교를 계속 줄여야 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소규모 학교 클러스터 모델이 생긴다면 지속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겠네요.

▶조한혜정=학생 수가 줄어드는 서울 신촌 지역의 초등학교들을 보죠. 신촌 일대엔 아티스트나 생태 프로젝트를 하는 청년들이 많은데, 이 초등학교의 빈 공간을 그들의 공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장인들에게 학교 공간을 내주는 거죠. 공방은 그 학교 학생들에게는 교실이 되고, 힐링이 필요한 청년들은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개념입니다. 지방과 달리 도심 학교가 가질 수 있는 풍부한 인적자원을 활용해 훌륭한 소규모 학교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학교는 학생·교사가 머리 맞대는 곳
▶조희연=학교를 둘러싼 마을의 다양한 문화적·교육적 자원이 몰려드는 ‘소규모 마을 결합형 학교’겠군요.

▶조한혜정=교장이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하면 그건 학교가 아닙니다. 지금처럼 정문을 닫아걸고 이상한 사람이 올까 봐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하는 그런 학교와는 다릅니다. 학교란 수상한 사람이 오면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원끼리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는 구조여야 합니다.

▶조희연=지난해 우리는 큰 비극을 겪었습니다. ‘4·16 이후의 교육 체제’라는 표현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교육이 뭐가 달라져야 할까요.

▶조한혜정=당시 배에 있던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고 하지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모여 있지 말아라” “작당하지 말아라” “지금은 공부할 때다” 하는 얘기를 듣고 큰 겁니다. 사실 아이들은 “지금 왜 이렇게 됐지?” “망보고 올게”라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작당했어야 했는데, 그저 손만 잡고 있었던 거죠. 우리 시대는 그 정도의 활동력이 있는 아이만 키우고 있습니다. 이런 재난은 또 일어날 수 있어요. 서로 협력해 스스로 일정 부분 안전을 챙길 수 있는, 그런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현 공교육은 노동을 위한 인간만 배출
▶조희연=공교육 황폐화를 벗어나기 위해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조한혜정=문제가 심각한데 왜 이렇게 터무니없이 낙관적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해 어떻게 아이들을 바꿀지 고민해야 합니다. 도심에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 본다든지, 교과 내용도 사회성을 키우도록 한다든지…. 연극을 기본 과목으로 한 뒤 수학을 배우게 하면 굉장히 깊이 있는 물리학자도 나올 수 있어요. 현행 교육체제에서는 노벨상 받는 사람이 못 나옵니다. 노동자만 나올 겁니다.

▶조희연=가만 보면 학교가 근본적으로 많이 무너져 있거든요. 아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데 교육 시스템은 낡은 상태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부조화가 있는 거예요.

▶조한혜정=부모들도 심각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프로그램을 하든 신뢰를 못하고 있죠. 신뢰받을 수 있는 공간에 1년을 맡기면 아이들도 굉장히 달라집니다. 그 공간은 소규모여야 하고, 거기엔 마을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지는 어른, 존경받는 어른들이 있고, 괜찮은 청년들이 돕고, 세대 간의 배움이 가능한 확실한 장소성을 지닌 공간이죠. 이 모델을 제대로 내는 게 새 교육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아이 키우는 경험이 백 배 더 중요
▶조희연=적대적이고 약육강식의 사회라지만 그래도 공유 지점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점이 전혀 없는 상태로까지 우리 사회가 험악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한혜정=이 시대의 환대 관계는 오직 엄마와 아이뿐이에요. 그래서 엄마는 오로지 매니저 맘이 돼버렸죠. 환대란 세 명 이상이 구성한 사회여야 하는데, 한 명의 엄마가 남에게 맡기는 걸 불안해하며 아이를 혼자 다 키우려 합니다. 아이 입장에서 엄마 외엔 신뢰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아인 절대로 협동적 자아,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없는 거죠.

▶조희연=엄마의 독립도 필요한 것 같네요. 아이 교육을 위해 자신의 삶이 완전히 도구화된 엄마가 아니고, 아이의 매니저로서 엄마를 넘어서는 그런 엄마요.

▶조한혜정=제가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엄마가 너무 주체적으로 독립했기 때문에 내가 다 애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사회는 끊임없이 ‘경력 단절’이라는 용어로 ‘엄마도 경력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해요. 아이를 키우는 존재로서의 감각이 없는 겁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연봉 얼마짜리 경력을 관리하는 것보다 아이를 키우는 경험이 백 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경제와 새로운 학습 공간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즘 석학이자 문화인류학자다. 전길남 KAIST 명예교수의 부인인 그는 자녀들과 서로 이름이나 별명을 허물없이 부르며 소통한다. 딸 주원씨는 엄마를 ‘조한’으로, 엄마는 딸을 ‘노자’라고 부른다. 가족 간의 소통이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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