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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 읽기] 스위스국립은행(SNB)의 ‘거대한 도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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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18면

올 1월 15일 스위스국립은행(SNB)은 2011년 9월 7일 이후 3년4개월 지속한 ‘유로화-페그제’를 전격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물론 세계 주요 증시의 주가가 큰 폭으로 출렁거렸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며칠 사이에 거의 모든 증시가 프랑코겟돈(francogeddon·스위스 프랑화 충격)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면 SNB의 ‘유로화-페그제’ 포기가 국제증권시장에 미친 영향은 그야말로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SNB, 환율질서에 의미 있는 선례 남겨
그러나 국제 증시에 미친 영향이 일시적으로 적었다고 해서 SNB의 행동이 국제환율정책에 미친 영향이 적다고 볼 수는 없다. 거꾸로 스위스의 조치는 국제환율 질서에 매우 큰 의미 있는 선례를 남겼다고 봐야 한다. 첫째로, 급격한 시장환율 변동을 안정시키기 위해 중앙은행이 환율제도를 수시로 변경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조치를 ‘거대한 도박(Big Gamble)’ 혹은 ‘엄청난 실수’라고 폄하했지만 스위스로서는 그리하지 않을 수 없는 속사정이 있었다. 2011년 9월 SNB가 스위스프랑화(CHF) 환율을 유로화에 고정(1유로=1.2CHF)시키기 훨씬 이전인 2008년 초부터 유로화는 심각한 약세 국면에 있었다. 부진한 유럽 경제에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가 겹쳐 유로화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추락했다. 당연히 스위스프랑화에 대한 수요가 폭등하면서 1유로=1.66CHF(2007년 말)이던 환율은 2011년 9월 1.2CHF까지(약 27%) 떨어졌다. 유로화에 대한 CHF의 강세는 스위스의 제조업 및 관광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 뻔했다. 2~3년을 망설이던 SNB는 2011년 9월 전격적으로 ‘유로화-페그제’를 도입한 것이다. 스위스 통화 당국의 목적은 두 가지다.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CHF 강세를 용인하기 힘들다는 점과 최대 무역 상대국인 유럽연합(EU)과의 환율을 1.2 정도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동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스위스 통화 당국은 매년 엄청난 규모의 유로화를 매입해 왔다. 그 결과 지난 3년4개월간 CHF 환율은 1.2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나름대로 SNB의 정책은 성공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둘째, SNB가 선제적으로 환율정책을 선도한다는 점이다. 최근 주변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1유로=1.2CHF를 유지하는 데 엄청난 양의 통화 공급이 필요한 상황에서 유럽 경제가 부진하고, 독일은 반대하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형 양적완화(QE)를 도입할 태세여서 마이너스 금리인데도 스위스프랑화에 대한 수요는 폭증하고 있다. 유로화 약세를 홀로 뒤집기 어려운 추세가 되자 “더 상처받기 전에 지금 바로 행동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선제적으로 페그 제도의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셋째, SNB의 조치는 무엇인가 나타날 현상에 대한 전조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예를 들면 상상을 초과하는 ECB의 양적완화 조치(1월 22일 예정)나 러시아의 금융위기, 혹은 유럽의 위기를 예상하고 내린 조치일 수 있다는 점이다. 끝으로 스위스 조치가 다른 나라의 환율정책에 파급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덴마크의 페그제 포기가 거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홍콩의 페그제 포기에 대한 우려도 대두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도 스위스를 본받아야 한다며 중국의 페그형 관리변동환율제도에 대한 반성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페그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도로 옮겨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출과 성장세가 부진한 상황에서 2년 이상 지속한 1달러=6.1위안의 달러 페그 제도를 변경할 가능성은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엔-원, 유로-스위스프랑 관계와 비슷
유로화에 대한 CHF처럼 최근 몇 년간 원화는 일본 엔화에 대해 전례 없는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로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천문학적인 경상수지 흑자로 원화가 달러에 대해 강세를 보이는 것이 CHF와 흡사하다. 스위스도 기록적인 외환보유액(5360억 달러)을 지니고 있고, 한국도 사상 최대에 가까운 341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다. 만약 원-엔 환율의 안정이 한국 경제에 중요하다면 우리도 스위스처럼 원-엔 환율을 예를 들어 100엔=1000원 혹은 1100원에 페그할 수는 없을까. 스위스·홍콩·덴마크·중국은 페그제를 도입해도 되고 우리는 ‘반드시’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해야 하는 건가. 조금 지나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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