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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樂] 검은 흙냄새 풀풀 … 귀에 감기는 쇳소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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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27면

판소리 동편제 명창 강도근(1918~96). 조선의 대표적 명창 송만갑의 소리제를 이었다. [중앙포토]

허삼관은 아버지다. 군자삼락(君子三樂)을 염원했나 보다. 세 아들은 모두 ‘락’자 돌림이다. 아들이 셋이니 기쁨도 세 배였을까? 속 모르는 소리다. 그에겐 말 못할 아픔이 있다. 간혹 지난 기억이 못 받은 돈처럼 욱하고 떠오르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강도근의 ‘흥보가’

내막은 이렇다.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이 혼전 하소영과 이리저리 ‘19금’ 해서 장남 ‘일락’이를 낳은 것이다. 그는 십여 년 동안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종달새의 왕’ 또는 ‘자라 대가리’라고 그를 놀려댄다. 배우 하정우가 감독을 맡은 영화 ‘허삼관’ 이야기다.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한국판으로 각색했다.

그런데 제목이 짧아졌다. 피를 판다는 뜻의 매혈(賣血)이 제목에서 사라진 것이다. 매혈과 문화혁명 등의 부분을 많이 삭제해서일까. 영화는 배추 값 올랐다고 양배추 김치 내주는 밥집처럼 맨숭맨숭하다. 매혈이라는 행위가 담고 있는 절박하면서도 숭고하고 그러면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을 충실히 표현해내지 못한 듯하다. 작품 속에는 피를 많이 팔기 위해 방광의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가득하다.

우리 고전에도 생에 대한 낙관과 긍정을 가진 아버지가 한 명 있다. 자녀 생산 능력은 허삼관을 능가한다. 판소리 ‘흥보가’의 주인공 흥부다. 결국 허삼관은 21세기 흥부이며 흥부는 조선의 허삼관인 셈이다. 판소리 흥보가는 아름다운 음악과 희극적 웃음, 세태에 대한 풍자를 맛깔나게 버무려 놓은 조선 최고의 전통 요리다.

여기서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흥보가의 내용을 새삼 길게 전할 필요는 없을 성싶다. 다만 모든 고전과 군대 내무반 점호의 공통점은 무언가 새로운 것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군대는 좀 고통이 따르지만 고전은 언제나 지적·미학적 쾌감을 준다. 그러므로 다 아는 흥보가라도 당직사관처럼 다시 한번 살펴볼 일이다. 흥보가에도 허삼관이 피를 파는 행위와 유사한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매품을 파는 장면이다.

“박생원, 그러지 말고 품 하나 팔아 보실랴오?”
“아, 돈 생길 품이면 팔고 말고.”
“박생원 곤장 여나뭇 맞어 보실랴오? (중략) 우리 고을 좌수가 병영 영문에 잡혔는데 좌수 대신 곤장 열만 맞으면 매삯은 한 대에 석 냥씩, 열 대면 서른 냥이요, 여그 누구든지 말 타고 다녀오라는 마삯 닷 냥까지 제직해 놨으니, 그 일 한번 해보실랴오?”

흥부는 아내의 만류와 가장으로서의 허세 그리고 두려움 속에 매품을 팔러 간다. 성공했을까? 흥부는 매품을 새치기당한다. 서글픈 현실을 건너는 민중의 희극적 상상력이다.

실제 매품 파는 거래는 조선 후기에 종종 있었다고 한다. 성대중의 『청성잡기』에는 매품을 팔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상습적으로 파는 이들은 더러 죽기도 했다고 한다. 마치 허삼관을 매혈의 세계로 인도했던 방씨와 근룡이가 그랬던 것처럼. 피나 매를 파는 행위는 비극적 상황이긴 하지만 또한 가난한 이들의 육체에 대한 강한 긍정도 담겨 있다. 정신의 관념성이 언제나 두려워해야 마땅한 민초들의 약동하는 육체적 강인함 말이다.

흥보가를 가장 멋들어지게 불렀던 이는 고(故) 강도근 명창이다. 그의 집안은 유명한 국악 패밀리다. 대금 무형문화재였던 강백천 선생, 안숙선 명창이 그의 일가다. 강도근 명창은 남원을 지켰던 동편제 판소리의 적자였다. 그는 자신이 배운 소리를 바꾸기보다 지키는 데 자부심이 높았다. 빈티지 영국제 스피커들처럼.

그는 좀 유별났다. 과거 예인들이 소리에 목숨을 걸면서도 주로 한량들과 어울려 다녔던 반면 강도근 명창은 고향의 흙과 어울렸다. 소리를 하지 않을 때 그는 평범한 농부였다. 논에 모를 심고 밭을 갈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리에서는 검은 흙냄새가 난다. 판소리에서는 이런 소리를 ‘철성(鐵聲)’이라고 한다. 음반으로 들으면 처음에는 좀 답답하거나 고루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의 소리는 ‘고려청자의 쑥물’과 ‘조선백자의 옥’ 같은 소리가 아니다. 조선의 막사발 같다. 강도근 명창의 강직한 울림을 따라가다 보면 어린 시절 동네 형들과 파먹던 칡뿌리의 달달함 같은 것이 귀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 그의 소리는 하드보일드다.

이런 무심한 자연미는 음반(작은 사진)의 만듦새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강도근의 ‘흥보가’ CD는 트랙을 나누어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제작사의 무신경함이 단점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의외로 이런 불친절함이 아날로그적인 여유로움을 가져다주었다. 과잉 서비스에 익숙한 세대에 긴 호흡의 형식을 강제하는 역설의 미학이다. CD 한 장이 하나의 트랙인 강도근의 ‘흥보가’는 일단 틀면 끝까지 다 들어야 된다. 트랙을 건너뛰고 싶은 조바심과 다툴 필요가 없으니 좋다. 구불구불 강물처럼, 소리골을 따라 종착지까지 다다르는 LP처럼 그저 내버려 두면 된다. 시간은 그렇게 아날로그로 흐른다.



엄상준 취미를 직업으로 삼고 싶어 라디오 PD를 시작했다. 클래식·영화음악·노래자랑 공개방송까지 다양한 프로를 만들었다. 현재는 부산지역 민방 KNN PD로 영화 프로그램 ‘시네포트’를 제작하고 있다. 인문사회·문학·미학 책을 즐겨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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