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6)-육사졸업생들(209)「도드」준장 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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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52년5월7일 아침 거제도 포로수용소장 「프랜시스 T 도드」준장은 제76포로수용소 대표로부터 면담요청을 받았다.
「도드」준장은 하오2시 그의 보좌관 「레이븐」중령을 대동하고 제76 포로수용소 정문앞까지 가서 포로들과 만났다. 포로들은 식량과 피복·약품·기타 물자의 공급을 원활히 해달라는등 쓸데없는 요구를 하면서 면담시간을 끌었다. 하오3시15분께 「도드」준장이 회견을 끝내고 막 돌아가려는 순간 20여명의 포로들이「도드」장군을 밀어붙여 수용소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포로수용소를 순찰중이던 경비병들이 달려왔을 때는 이미 「도드」소장의 그림자는 수용소 안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수용소 출입문 기둥을 붙잡고 포로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던「레이븐」중령만 가까스로 구조했다.
「도드」준장을 끌고 들어간 포로들은 오물을 바다에 버리고 돌아오던 포로들이었다. 따라서 이날 면담요청과 납치극은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도드」준장을 납치한 포로들은 곧이어 수용소 앞뜰에서 시의를 벌이며『우리는 「도드」를 사로잡았다. 수용소당국이 무력을 사용하여 「도드」를 도로 뺏으려고 하면 「도드」의 생명은 위험하게 될 것』이라며 기세를 올렸다.
「도드」준장의 납치사건은 즉각 서울의 미8군사령부에 보고되었으며 8군사령관「벤 플리트」대장은 유엔군사령관 「리지웨이」장군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리지웨이」장군은 「도드」준장을 구출하는데 필요한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다.
「벤 플리트」장군은 미제1군단 참모장이었던 「찰즈 F 클슨」 준장을「도드」대신 거제도 포로수용소장에 임명함과 동시에 다음날인 8일「콜슨」준장과 함께 거제도로 내려가 포로들에게 요구조건을 제시하라고 통고했다.
포로들이 보낸 요구조건 가운데는 과거 포로들에게 가한 형벌내용을 밝히고 포로들에게 반공주의자가 되기를 강요하지 말 것등이 들어 있었다.
공산포로들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었던 「콜슨」신임소장은 그만 그들의 유도심문적인 함정에 말려들고 말았다.
유엔군 사령부는 『포로 학대를 중지한다』는 내용의 협상문에 서명하고 만 것이다. 그는 포로수용소 당국이 포로들에게 가혹한 행위를 하지 않았으므로「도드」준장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양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포로학대중지」는 바로 「포로학대인정」으로 간주돼 최대의 선전자료가 되었다.
당시 판문점에서 열리고 있던 휴전회담에서 북괴의 남일은 당장 『포로가 된 우리 장정들에게 저질러지고 있는 당신들의 범죄행위는 제네바협정을 분명히 위반한 것』이라고 들고 나왔으며 「콜슨」준장의 양보에도 「도드」장군은 계속 억류상태였다.
곧 「도드」준장이 석방되리라고 믿었던 유엔군사령부는 딜레머에 빠졌다. 9일 「벤 플리트」 대장은 포로들에게『5월9일 하오 9시까지「도드」준장을 석방하라.이예 불응하면 유엔군은 실력행사를 할 것이다』고 최후 통첩 보냈다. 이날 해질 무렵 탱크와 중장비를 갖춘 미군병력이 제76 포로수용소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탱크의 포문은 수용소 안을 겨냥하고 있었고 화염방사기는 공중을 향해 시험발사를 하고 있었다. 군가를 부르며 기세가 등등하던 포로들은 일순간 잠잠해지더니 하오9시3분 「도드」준장이 제76 포로수용소를 걸어 나왔다.
5월15일 「리지웨이」장군과 교체된 신임 유엔군사령관 「클라크」장군은 「콜슨」준장이 포로들과 합의한 사항은 모두 무효라고 선언했다. 이 소식에 접한 공산포로들은 수용소에서 다시 소란을 피웠다. 6월10일 폭동이 격화돼 포로와 미군이 충돌 ,미군 14명과 포로 1백60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사건으로 「도드」준장과 「콜슨」준장은 종신 대령으로 강등되어 퇴역했다.
「클라크」 장군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그의 저서 『한국전쟁 비사』에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언급, 『공산주의자들은 세계의 이목앞에 우리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유엔군이 포로감시를 위해 일선 전투력을 감소시키지 않으면 안되게 할 목적으로 포로들에게 폭동을 일으키도록 명령했다』고 술회했었다.
아뭏든 한국전쟁중 미군의 입장을 가장 난처하게 만든 사건중의 하나가 바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이었다고 하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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