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유치전 '과열' 후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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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경북 영덕군 영덕읍 야성교 네거리에 방폐장 유치 홍보 플래카드가 빼곡히 걸려 있다. 영덕=조문규 기자

다음달 2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이하 방폐장) 유치 주민투표를 앞두고 신청지역마다 찬성률을 높이기 위한 주민 홍보전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북 경주.포항.영덕과 전북 군산 등 신청지역 곳곳에선 플래카드와 깃발, 가두방송 공세가 치열하다. 반대 단체들은 관권 개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다 지역 간 성명전까지 등장해 투표 이후 심각한 후유증마저 우려되고 있다.

◆ 사활 건 홍보전=12일 영덕군 영덕읍 '범 영덕군 방폐장 유치위원회'사무실. 이곳에서 일하는 30여 명은 가슴에 '원전센터! 영덕의 미래.희망'이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유치위는 주민이 만든 조직이다.

이날 사무실엔 여성단체협의회 간부 10여 명이 "유치위에 힘을 보태기 위해 왔다"고 했다. 이들은 매일 회원 14명을 동원해 면 지역 노인정 등을 돌며 방폐장을 홍보하고 있다.

유치위는 이날 오전 영덕군민회관에서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영덕읍 유치 결의대회를 열었다. 앞으로 8개 면 지역에서 같은 행사를 열어 분위기를 띄운다는 전략이다. 유치위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이 드러내 놓고 찬성 투표를 독려하는 지자체도 있다"며 "이판사판인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포항시는 정장식 시장이 11일 오전 간부회의에서 "투표율 높이기에 힘써 달라"며 당부를 하기도 했다. 포항의 유치위원회도 읍.면.동별로 1000여 개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통.반장들이 밑바닥 표를 훑는 '작전'에 나섰다.

군산도 군산시와 전북도 공무원들이 실.국별로 지역을 맡아 통.반장 등을 만나 유치 활동을 격려하고 있다.

◆ 반대단체 반발='경주 핵폐기장 반대 공동운동본부'는 9일 부재자 신고율이 발표된 뒤'민주주의가 죽었다'는 검은색 플래카드를 시내 곳곳에 내걸었다. 공동운동본부 이문희 사무국장은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공무원과 이.통장을 동원한 부재자 신고를 해도 되느냐"며 "관권이 개입한 물증을 수집 중"이라고 말했다.'군산 핵폐기장유치반대 범시민대책위'는 "부재자 신고의 90%가 주민투표 발의일(4일) 이전에 공무원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신고 받은 것으로 사전선거 운동에 해당돼 무효"라고 주장하며 회원 20여 명이 10일 시장실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 후유증 우려=방폐장 유치 반대 단체들은 벌써 '주민투표 무효 투쟁'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관권.금권이 동원돼 주민투표법을 위반한 선거여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포항시 반대대책위의 강호철(48) 상임대표는 "(투표에서) 어느 지역이 결정되더라도 그것은 무효 투쟁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타지역 반대 단체와 연계해 무효 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찬반 주민 사이에 깊게 파인 갈등의 골을 메우는 것도 숙제다. 영덕군 주민 김모(68)씨는 "갈수록 분위기가 과열돼 방폐장 얘기를 꺼내기가 무섭다"며 "투표 이후가 더 문제"라고 걱정했다. 또 다른 주민은 "분위기가 '찬반'으로 갈리는 바람에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선거보다 후유증이 더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송의호.장대석.홍권삼 기자<yeeho@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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