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3)제79화 육사졸업생들(206)|포로수용서의 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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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인생을 살다 보면 「우연」과 마주치는 일이 종종 있다. 그 「우연」은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감격스러울 때도 있다.
포로수용소에서 사관학교 동기생 3명이 만난 이야기는 우연치고는 너무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50년9월16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내 아군이 낙동강전선에서 총반격전을 벌이게될 당시 아군에 붙잡힌 전쟁포로는 1천명을 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전선이 북쪽으로 확대됨과 동시에 포로의 숫자는 13만명에 육박했다.
전투에서 얻은 전과였지만 너무 많은 포로는 관리상 골칫거리가 되었다.
유엔군은 북진하면서 인천·평양·진남포·해주등 주요도시에 임시 포로수용소를 설치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할때 포로수용소도 철수시켰다.
50년11월말께 인천에 있던 포로들이 제일 먼저 기차에 실려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로 옮겼고 평양·진남포·해주수용소의 포로들도 부산으로 이동했다.
51년2월초 부산 거제리·동래등에 수용돼 있던 포로수는 13만7천명이나 되었다.
유엔군사령부는 처음 이들 포로를 일본이나 제주도로 이송할 생각을 했으나 너무 거리가 멀고 관리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에 포로수용소를 만들기로 했었다.
51년2월 부산지방에 있던 포로 가운데 8만명을 1차로 거제도로 이동시켰다.
당시 거제도포로경비사령부(사령관김도영대령)작전처장이던 정태성중위(생도1기·예비역대령·대명개발대표)는 4월 어느날 포로들의 야외작업 실태를 감독하기 위해 철조망통로를 지나고 있었다.
1만여평이 넘는 프로수용소는 그주변을 3m 간격을 두고 3중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어디선가『태성아』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은 정중위는 처음에는 잘못 들었거니 하고 지나쳤다가 다시 『태성아』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철조망 너머 일군의 포로속에 육사동기생인 용태영소위가 있지 않은가. 처음엔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고 머뭇거리다가 눈을 닦고 다시 보니 그는 분명히 용태영소위였다. 다른 포로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얼른 그 자리를 떠나 사무실로 돌아온 정중위는 경비병을 시켜 용소위를 불러오게 했다.
대전임관식때 생도1기생들은 용소위가 보이지 않자 태능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용소위는 6월27일밤 태능사관학교앞 F고지에 배치되었다가 철수명령을 받지 못한채 생도2기생들을 인솔하고 밤을 새워 고지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용소위는 날이 훤히 밝은 뒤 생도대대가 이미 철수한 것을 뒤늦게 알고 2기생들을 먼저 팔당쪽으로 보내고 자신은 학교 앞으로 나오다가 박격포탄 파편에 오른쪽 손을 심하게 다쳤다. 결국 그는 피난민 대열에 끼여 생도대를 찾아 남하하다가 미군에 적으로 오인돼 포로가 됐다는 것이다.
우스운 얘기지만 당시 한국군이 생포한 포로들은 1백% 적병이었지만 미군이나 외국군에 붙잡혀온 포로들 중에는 한국군 낙오병도 있었고 북괴에 강제로 끌려간 반공청년들도 많았다.
군번이나 계급장을 받지 못한 용소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중위는 이 사실을 김도영경비사령관에게 보고하고 대책을 의논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전쟁포로에 대한 제네바협정에 따라 이미 명단이 중립국 감시위원단에 등재돼 있었기 때문에 탈출을 하지 않는 한 빼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중위는 궁리 끝에 자신이 용소위대신 수용소에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동기생을 구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정중위는 용소위를 매일 아침 점호가 끝나면 작전처장실로 불러내 하루종일 함께 지내다가 밤이면 수용소 안으로 돌아가게 했다.
51년8월10일 용소위는 작업반원으로 위장 차출되었다가 정중위의 도움으로 수용소를 탈출, 헌병 2명의 호위를 받아 대구 육군본부에 무사히 도착, 귀대신고를 하고 그 날짜로 예편했다.
군인이 되기 위해 청운의 뜻을 품고 육사에 들어갔던 그는 독학으로 57년 사법고시(8회)에 합격, 법조인이 되었으며 지금은 정치인으로 자유민족당을 만들어 총재직을 맡고 있다. 그는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도 많은 화제를 뿌렸었다. 법대에 재학중이던 동생의 강의노트를 빌어 단 2백4일간 고시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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