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71)제주고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고씨는 탐라의 고대왕족이다. 전국에 약10만가구, 50여만명. 인구순위로 20번째.
제주외에 장흥·청주·안동등 본관이 있으나 모두 제주의 분적종으로 실질적으론 제주단일본이다.
역사상 고구려의 왕성이 고씨이지만 그 맥온 끊긴채 멀리 남해고도 제주에서 발원한 고씨들이 고려조이후 본토에 상륙, 우리나라 유일의 고씨가 되어 전국에 살고있다.
그중에서도 많은 곳은 역시 발상지인 제주. 전체의 1할가량인 1만여가구가 제주고향을 지킨다.
시조는 널리 알려진 제주삼신의 어른인 고을나-.
제주의 고사를 전하는 『제주시』는 삼신의 탄생을 이렇게 전한다.

<시조는 고을나>
『영주(제주의 옛이름)에는 태초에 사람이 없었는데 삼신인이 한라산북쪽기슭 모흥혈에서 솟아났다. 맏은 고을나이고 버금이 양을나, 끝이 부을나였다. 용모가 매우 크고 비범하였다. 늘 가죽옷을 입고 고기만을 먹으며 사냥으로 일을 삼고 살았다.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 동해에 나무상자가 떠오는것을 보고 바다에 내려간즉 그속에 삼신녀가 타고 있었다.
각각 아내로 맞고 삼신녀가 가져온 송아지와 오단종자로 씨뿌리고 가축을 길러 생업을 삼으니 비로소 인간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고씨의 족보는 고을나로부터 45세까지 대대로 고씨가 왕위를 세습해오다 46세 고말노가 고려에 입조, 귀속하니 이가 곧 모든 고씨의 중시조가 된다고 밝히고 고을나로부터 15세 고자견왕까지를 「왕세기」란 이름으로 수록하고 있다.
1세를 30년으로 잡더라도 적어도 1천년이상 탐나국독립왕조를 지켜왔다는 주장이다.
제주가 명백하게 본토에 귀속된것은 고려숙종10년(1105년). 그러나 성주·왕자의 작위를 세습하며 제주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군림했다.
그에앞서 고려태조8년에는 고려에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고 21년(939년)에는 왕자 고말자가 입조해 이무렵부터 제주고씨들의 본토진출이 시작된다.
말노의 아들 유·강·소 3형제가 모두 고려의 과거에 급제, 벼슬길에 올랐다.
고유는 우복사(종2품)의 고위직까지 올라 고씨중앙진출의 탄탄한길을 열었다. 이후 고려조에서 9상서12한림을 배출하는등 고씨는 탐나왕족에서 일약 전국의 명문가로 등장했다.
고려조 고씨를 대표하는 인물은 의종때 중서시낭 평장서를 지낸 고조기다. 그는 학문에 정통하고 시에도 일가를 이루었을뿐 아니라 고결한 인품으로 50여년간 고려조정에서 큰역할을 맡았다. 그의 시가「동문선」에 실려 전한다.

<9상서 12한림도>
고득종은 조선초기 제주고씨의 이름을 다시 높인 인물.
세종9년(1427년)문과에 급제한 그는 예조참의·한성판윤·동지중추부사를 지냈는데 명나라에 2차례, 日本에 1차례 사신으로 다녀오는등 외교에 활약이 많았고 고향 제주의 향교를 중심으로 유학진흥에도 큰공적을 남겼다. 사후 문충공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의 아들 태필·태정·태보·태익등 네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 고위직에 올라 고씨가의 전성시대를 이룬다.
고형산(대제학·병·호조판서)은 화전군 고인비의 8세손.
조선조에 누구보다 고씨의 이름을 드러낸 사람은 임난때 3부자가 의병을 일으켜 순국한 제봉 고경명과 그의 아들 종후·인후다.
동래부사로 있다가 귀양했던 제봉은 왜군침입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5월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7월에 전사했다. 그때 그는 60세의 노인.
차남 인후도 함께 순절했고 그자리에 없어 살아남은 장남 종후도 「복수의병장」을 일컫고 다시 나가 나라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다 순국, 3부자가 나라에 목숨을 바친 충효가문의 전통을 세웠다.
전남광산군대촌면의 포충사는 이들3부자와 유창노·안영등 당시 의병용사들을 기리기위한 사당.
현대에 들어 고씨들은 각계에서 기라성의 면모를 보인다.
해방후 5명의 장관, 5명의 대학총장, 14명의 국회의원을 냈고 그밖에 학계·예술계·재계등에 숱한 인재가 있다.
장관은 고광만(문교)·고재필(보사·무임소)·고원증(법무)·고재일(건설)·고건(교통·농수산), 총장은 고병익(서울대)·고범서(숭전인)·고형곤(전북대)·고병간(경북대·연세대)·고황경(여·서울여대) 등이다.
우리미술계의 한시대를 좌우했던 춘곡 고희동과 미술사연구의 개척자 고유섭, 동아일보사장·회장으로 언론계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고재욱은 작고한 현대의 고씨인물.
가수 고복수, 히말라야를 처음 오른 산악인 고상돈도 기억되는 이름이다.
현재 국회에 고재청국회부의장·고정훈·고판남·고귀남·고병현의원등이 활약중. 전국회부의장 고흥문씨는 일선에서 물러서있다. 법조계엔 고재호전대법관·고빈권·고광우부장검사, 군에 고종석·고영희·고명승 3명의 육군소장, 재계엔 고준식 포항제철사장, 고광표 대창운수회장, 고판남한국합판회장등이 있다.
학계에선 고영복(서울대)·고승제(한양대)·고광도(서울대의대) 교수등이 알려진 이름이며 천도교교령 고정훈씨와 시인 고은씨가 이채를 띤다. <글 문병호·사진 장남원기자>
▲다음주는 <수원 백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