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동결"가능할까|진통겪는 내년도 예산편성작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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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스스로 그어놓은 마지막 선을 지키기 위해 정부는 심각한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동결을 선포한 내년도 예산편성작업의 진통이 그것이다. 금년 예산규모 10조4천억원 수준에서 내년도 나라살림을 꾸려가자면 결국 각부처가 증액신청한 2조4천6백억원(23·6%)모두를 갈라내야 한다. 예산동결의 명분이 안정기조를 더욱 다지고 외상절감을 위해 정부스스로가 앞장서서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것인데야 아무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더욱 지금까지의 방만한 재정운용이 늘 비판의 표적이 되어왔던 터고 보면 정부 스스로가 이 같은 초긴축의 고통을 자제하고 나선 것은 정말 박수를 받을만한 일이다. 내년은 선거까지 있는 해가 아닌가.
그러나 어느 손가락을 자를 것인지 문제다. 예산동결을 실현해내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난제가 첩첩산중이다.
낭비적인 요소를 샅샅이 뒤져내서 없애고 아무리 쓰임새를 줄인다해도 금년 수준의 동결은 커녕 자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경비들부터 우선 벽에 부닥친다.
그 첫번째가 국방비다. GNP의 6%를 국방비로 책정하게되어 있는 불문율에 따를 경우 1천6백∼1천8백억원이 그냥 늘어난다.
여기에다 법에 따라 내국세의 11·8%를 무조건 떼어쓰게 되어있는 교육비로 늘어날 것이 1천3백억원, 공무원의 호봉등급과 불가피한 노원에 따른 4백60억원 등 5천억원 가까운 돈이 가만히 앉아서 늘어나게 되어있다.
전체예산규모를 금년수준에서 묶겠다는 동결원칙인 만큼 증액신청한 예산요구액이 깎이는 것은 물론 앞서 열거한 「늘어날 수밖에 없는 돈」만큼을 다른 부분에서 더 깎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뜩이나 경직성 경비가 전체예산의 7할을 차지하는 마당에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난감한 일이다. 단순히 술·담배끊고 택시 타던 것을 버스 타고 다닌다고 해서 해결 될 살림살이가 아닌 까닭이다.
그야말로 근본적인 발상전환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예산속결이다.
성역으로 간주되어온 방위비 문제가 새삼 거론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물론 안보의 중요성이나 대미관계 등을 고려할때 획일적으로 속결원칙을 밀어 붙이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사실 예산금액이 얼마 늘어나느냐는 문제를 떠나 GNP의 6%를 고수한다는 것 자체가 안보면에서 지니는 상징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전체예산을 동결하겠다는 마당에 방위비만을 늘리기도 어렵다. 안보는 예산차원 이상의 절대적 명제다.
따라서 안보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예산 절약에도 기여할 수 있는 국방예산의 ??화방안을찾아야 할 것이다. 륵히 국방비중 투자성 예산에 철저한 검토가 가해질 전망이다. 보다 경제적인 친?을 가지고 비효율적인 요소와 절약의 소지를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작년 예산작업의 막바지에서 경험했듯이 방위비의 3백억원 삭감이 전채 예산편성방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어쨌든 방위비를 비롯해 교육과 지방재정에 대한 법정교부금 등 굵직굵직한 항목들에 대해서는 결국 경제논리이전에 고차원적인 정치결단에 달려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것들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지지 않는한 사실상 동결의 원칙자체가 의문시 된다. 문제는 합리적인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서 동결을 동수하는 것이다. 「예산동결」 자체가 정부의 경제운용 목표가 돼서 정부가 마땅히 해야할 일까지 포기한다면 차라리 안하니만 못한 동결이다.
그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다. 공무원 봉급 동결만해도 그렇다. 5차 5개년계획상에는 구조적인 공무원처우 개선을 위해 물가오른 것을 감안한 실질임금 기준으로 매년 5%씩 올리겠다던 것을 내년에는 물가가 오르더라도 하푼도 안올려 주겠다는 것이다.
공무원 스스로가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사명감이야 참으로 높이 평가되어야할 일이나 현실적으로 빚어질 이에 따른 사기저하나 행정의 비효율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 급하면 꼭 문제가 생긴다. 그것이 정말 불가피한 것이라면 최소한 그에 따른 희생이나 인내는 모든 사람, 모든 부문에 공평하게 균배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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