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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5〉|"동족가슴에 총 겨누지 말고 투강 권유 전단 뿌려라" 명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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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가 앓는 동안 못 적은 일들을 보충해야겠다.
장석윤 치안국장이 대통령을 조용히 뵙자고 찾아왔다. 장 국장은 나도 잘 아는 분이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부터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다.
장 국장은 『조병옥 내무장관이 자기를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눈치이고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사표를 내고 왔다』 고 보고했다.

<도둑질은 용납 못해>
『경찰업무가 막중한 때에 「몬태나장」이 그만두면 안되는데…』하며 대통령은 애석해 했다. 그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
조 내무는 우덕술씨를 치안국장에 임명했다.
다음날 임병직 외무장관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서 들어왔다.
미군 GI가 장관지프를 훔쳐 타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임 장관이 미군사령부에 이 사실을 항의했더니 그 쪽에서는 『우리가 당신나라에 수많은 지프를 주었는데 그까짓 한대쯤 없어진걸 뭐 그리 대단해서 항의를 하느냐』고 대답하더라며 흥분을 참지 못했다.
대통령은 임 장관에게 「무초」대사를 부르라고 했다. 대통령은 대사에게 『당신나라 정부는 그런 일을 용납하는지 몰라도 한국정부에서는 안됩니다.
미군병사들이 한국을 도우러 왔다해서 도둑질을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해서는 안돼요. 우리 땅에서는 한국인이건 미군이건 도둑질을 하면 벌을 받아야 됩니다.』
「무초」대사는 금시초문이라며 즉시 판상을 하고 그 병사를 색출,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상한 것은 모든 게 참담하고 헐벗고 굶주렸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도둑질을 한다는 사건보고는 한 건도 없었다.
기차는 밤새도록 북으로 올라가고 내려오고 있었다. 젊은이들을 가득 태우고 올라간 기차가 남으로 내려올 때는 그만큼 많은 부상병들을 태우고 왔다. 삶과 죽음의 교차를 매일같이 목격하는 것이다.
전선으로 향하는 열차는 불빛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차단을 해 검은 공룡이 움직이는 것 같았고 오로지 전의에 불타는 젊은이들의 군가와 함성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열차가 되돌아 올 때는 불을 환히 켰고 창문을 통해서는 붕대를 감고 피로 얼룩진 우리 젊은이들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 나는 『하느님, 어서 이 전쟁을 끝나게 해주옵소서』 하며 기도를 올렸다.

<날씨 나빠 걱정태산>
「딘」소장의 24사단은 「켈리」장군의 25사단으로 대치되었다. 달은 한없이 밝고 아름다왔다.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북상하는 태풍인 것 같다. 걱정이다. 지금까지 연합군이 우세한 것은 공군뿐인데 날씨가 나쁘면 부득이 제공권마저 잃게 된다. 역시 하루종일 귀를 찢던 프러펠러와 제트기소음은 들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최근 서울을 탈출해온 사람으로부터 또 소식을 들었다. 그는 중앙청에서 소련장교 3명이 걸어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서울 쌀값은 소두한말에 2만7천원이라고 한다. 대구보다 10배나 비싸다.
대통령은 적이 포진하고 있는 지역에 『동족의 가슴에 총을 겨누지 말고 국군에 투항하라』는 내용의 전단을 비행기로 살포할 것을 명령했다. 우리측의 심리전에·당황한 적은 어린아이들이 전단을 줍는 것까지도 총으로 쏘아 감히 어느 누구도 선뜻 전단을 주우려들지 않았다.
7월18일 대통령과 「무초」대사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언쟁을 했다. 대통령이「트루먼」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중에서 『우리 한국국민은 공산군을 우리의 본래 국경인 압록강과 두만강이 북으로 완전히 몰아낼 때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고 있다』고 밝힌 부분을「무초」대사가 빼자고 하여 두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미대사관은 소련의 전쟁개입이나 38선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이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장성들은 한결같이 대통령의 압록강이북 철퇴설을 지지하고 있었다.
「트루먼」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은 19일 사인되었다. 「무초」대사는 편지내용을 전문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우편을 이용하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것이다.

<대통령―무초 언쟁>
대통령은 「무초」대사의 제외를 받아들이는 대신 사본(사본)을 건네주고 오리지널은 파우치편에 장면대사에게 보냈다.
국방장관은 「워커」장군과 한· 미군의 방어선 배치에 관한 회의를 갖고 미 보병 2O사단을 안동에서 대전으로 이동시키고 대신 우리국군이 안동전선을 지키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긴장과 초조가 고무줄처럼 팽팽한 하루하루 가운데 대통령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꼬마친구들과 만나는 때였다.
대통령의 꼬마친구는 조 지사의 두 아들이었고 7살과 5살 정도였다. 두 녀석은 대통령 임시 집무실과 지사관저사이의 담장에 얼굴을 빠끔히 내놓았다가 대통령에게 들켰다.
대통령은 『이 녀석들, 엄마 아버지에게 들켜 혼나기 전에 냉큼 나한테 건너오너라』 하고는 집무실에 숨겨주고 함께 노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지난 신문과 달력으로 딱지를 접어 같이 딱지치기를 하고 종이배를 만들어 배를 띄우며 놀았다. 대통령은 딱지며 종이배 접는 솜씨를 14살때 디프테리아로 미국에서 죽은 친아들 태산이한테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조 지사부인이 담장 너머로 이를 보고 깜짝 놀랐으나 대통령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쉬』 하며 아이들을 놀라게 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이후부터 두 녀석은 대통령만 보이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품에 안기곤 했다. 대통령은 다섯 살짜리를 더 귀여워했다. 하루는 고 녀석이 내 종아리에 간지럼을 태우자 대통령은 라이벌이 생겼다며 농담을 했고 집무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오면 『마미,당신 보이프롄드가 왔어』 하며 환히 웃었다.

<친아들에 배운 솜씨>
대통령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이곳저곳 지사관저로 옮겨 다닐 때마다 여섯 일곱씩 되는 그 댁 아이들을 일일이 껴안고 귀여워했고 『지사는 복도 많은 사람이야』를 연발했다.
그때마다 나는 죄스런 느낌을 가졌다. 대통령은 이내 내 안색을 살피고는 『대한민국의 청년이 모두 우리 아들이야. 마미는 수없이 많은 아들을 두었으니 할 일이 많아』 하며 위로를 했다.
7월20일 아친 일찍 국방장관은 탄약이 부족하다는 보고를 했다.
또 게릴라전의 명수 「타이거금」(그의 이름은 지금도 기억이 흐리다)은 KMAG (미군사고문단) 가 『술만 마시지 하는 일이 없다』 면서『그 둘이 이론교육에는 밝을지 몰라도 우리 훈련병들에게 실전훈련은 제대로 시키지 않는다』 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정리=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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