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쟁과 대안: 감세 찬반 논란

한나라 "소비·투자 자극 효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사회:경기 부양을 위해 한나라당은 감세를 주장하고 열린우리당은 세수(稅收) 기반이 약화된다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과연 감세를 하면 서민생활도 안정되고 소비가 촉진되는가.

▶이혜훈:재정 지출 확대는 단기적인 성적을 위해 운동선수에게 약물을 주는 것과 같다. 8년간 추경 편성을 통해 재정을 확대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재정 지출은 정부가 세금을 걷어서 지출하는 과정에 누수가 있고 엉뚱한 곳에 돈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감세를 하면 깎아주는 만큼 바로 소비로 이어진다.

여야 의원과 전문가들이 10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감세정책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박기백 조세연구원 연구1팀장,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 강치원 강원대 교수(사회),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 이만우 고려대 교수.[김춘식 기자]

▶송영길:근로자의 49%가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또 소득세를 내는 사람의 60%가 과세표준(세금을 내는 기준) 1000만원 이하다. 실제로는 과표가 연간 4000만원을 넘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소득세를 부담한다. 결과적으로 소득세를 내려도 혜택이 부유층으로만 간다. 이들은 세금을 깎아준다고 소비를 늘리지 않는다. 기업도 3분의 1이 법인세를 안 낸다. 기업들이 세금 때문에 투자를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환경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는 국가가 성장동력 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중소기업 부품 소재 산업 육성을 위한 지출을 늘려야 한다.

▶박기백:단기적인 경기 부양에는 재정 지출이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감세가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지출 규모는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고 고령화로 재정 규모가 계속 커질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감세는 무리다.

▶이만우: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이 감세나 재정지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세가 된다고 중소기업이 당장 투자하고 고용을 늘릴 것인지는 의문이다. 투자할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재정을 늘려서 경제를 끌어가는 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나랏빚이 늘어나기 때문에 계속할 수 없다.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이나 공공기관 지방 이전 같은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

▶사회:한나라당의 감세안이 고소득층에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혜훈:한나라당이 제시한 10가지의 감세 정책 중 8가지는 저소득층과 서민을 위한 것이다. 자영업자의 면세점을 46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올리고 택시 영업용 LPG에 붙는 특소세를 면제하는 것 등이다. 가장 어려운 계층부터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

▶송영길:택시용 LPG 특소세를 면제하면 다른 차량에 대한 혜택을 주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또 택시용 LPG를 다른 차량에 쓰는지를 감독하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단 소주세율 인상 등에는 우리도 반대하고 있고 서민층을 위한 감세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회:우리의 법인세 부담이 선진국과 비교하면 큰 것인가.

▶이혜훈:한나라당이 제시하는 것은 일괄적인 법인세 인하가 아니다. 연간 2억원 이상의 이익을 내는 법인의 세율은 25%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2억원 이하의 경우 법인세율을 13%에서 10%로 낮추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세 부담이 경감되고 투자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송영길:법인세율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사회가 양극화될 때 필요한 것이 세금이다. 이럴 때 잘나가는 기업들이 더 부담해야 한다. 양극화를 해소해야 내수 기반을 회복시킬 수 있는데 감세를 하면 세수 부족이 심화된다. 세율이 1%포인트 낮아지면 법인세는 연간 1조2000억원, 소득세는 1조5000억원 감소한다.

▶박기백:국제적으로 보면 법인세율이 높지 않은데 실질적인 세 부담은 약간 높다. 계열사의 실적을 통합해 과세하는 연결 납세제도 등 과세 제도를 선진화해 실제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 법인세를 낮춘 지 1년도 안 돼서 다시 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회:현재 근로소득세의 세율은 적절한 수준이라고 보는가.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주장도 있다.

▶이혜훈:한나라당은 소득세율을 일률적으로 2%포인트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간 1인당 평균 27만원의 세금이 줄어든다. 감면되는 금액은 고소득층이 많지만 감면 비율은 오히려 저소득층이 높다. 서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과세자를 늘리고 과세 구간 조정도 검토할 수 있다.

▶송영길: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소득세율이 37%다. 우리의 소득세율(8~35%)이 결코 높지 않다. 소득세는 한번 깎아주면 올리기 어렵다. 여당에서는 현재 ▶1000만원 이하 ▶1000만원 초과 4000만원 이하 ▶4000만원 초과 8000만원 이하 ▶8000만원 초과로 돼 있는 4개의 과세 구간을 다섯 구간으로 세분화해 고소득층의 부담을 높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이만우:경제가 성장하면 소득이 늘어나는데 적절하게 세율이나 구간을 조정하지 않으면 부담이 커진다. 연소득 8000만원에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8000만원까지는 한나라당 안대로 세율을 낮추고 그 이상의 구간은 현재의 최고세율인 35%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박기백:1991년 8개로 세분화됐던 과세 구간을 점차 축소해 왔고 국제적으로도 줄이는 게 대세다. 이게 세분화되면 높은 과세 구간에 포함되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세금을 안 내고 있다는 것이다. 구간 조정보다는 면세점을 고정하면 소득이 증가해 자연스럽게 과세자 숫자가 늘어난다.

▶사회:정부 지출은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

▶이혜훈:한나라당이 복지비를 깎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양극화 과정에 희생된 저소득층은 충분히 지원하자는 입장이다. 대신 방만한 정부 예산을 깎아야 한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직제 근거가 없는 공무원이 2만3000명 늘었다. 공무원의 처우 개선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자. 고령화가 지속되면 일하는 사람은 줄고 피부양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현재 재정지출을 그대로 가져가면 나중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뼈를 깎는 지출삭감 노력이 있어야 한다.

▶송영길:공무원 수는 늘었지만 77%가 교원.집배원.경찰 등 외환위기 때 줄인 민생과 관련된 공무원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성장이 소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취약해졌다. 이를 이어주기 위한 재정지출은 꼭 필요하다. 또 남북 분단 해결 과제가 있는 상황에서 세수 기반을 약화시키는 감세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만우:여야가 감세를 놓고 논쟁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세 기반을 넓히는 것이다. 결국 민간과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기업에 과도한 책임을 물리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리=김원배 기자<onebye@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토론자>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박기백 조세연구원 연구1팀장
강치원 강원대 사학과 교수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