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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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나라 말만큼 색깔에 관한 수식어가 섬세한 언어도 없을 것 같다. 형용사를 좋아하는 일본인조차도 말문을 열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말과 실제가 다른 것이 우리의 생활 색감이다. 백의민족은 누구나 하는 얘기지만,한시절 길거리를 보면 회색과 감색의 행렬이었다. 외국에서도 단조롭고 진한 감색(감색)의 신사를 보면 거의 예외없이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이었다. 그 점에선 색맹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구미의 색명 사전을 보면 생활색만 무려 3백여종을 헤아린다. 기껏 무지개 색깔이나 외고 있는 사람에겐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이웃 일본만 해도 생활색은 2백여종이나 된다. 우리나라는 겨우 30여종을 헤아릴 뿐이라고 한다.
인간은 의지가 강한 것 같지만 색채엔 약하다.
이런 실험이 있었다. 건강한 성인을 적색의 방에 앉혀 놓으면 흥분이 지나쳐 끝내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반대로 청색방에 들어간 사람은 기분이 가라앉기는 하는데, 나중엔 의욕마저 잃어 버리고 만다. 황색방에 들어간 사람은 초조와 불안에 못이겨 얼마후엔 두통이 나고, 심한 경우는 정신이상에 빠진다.
색채는 이처럼 추상적 연상력이 있다. 적색은 열정·혁명·야만을, 오린지색은 쾌락·환희·적극성을 연상하게 한다. 황색은 희망·성실·발전, 녹색은 지성·이상, 청색은 침착· 진실, 자색은 우아·온후·불안… 이런 식이다. 죄수에게 푸른 옷을 입히는 것도 뜻이 있다.
그런 연상은 우리의 미각에 까지 작용한다. 비프스테이크에 삵은 홍당무나 신선한 녹색의야채를 곁들이는 것은 오랜 경험의 착상이다. 거꾸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일지라도 어둠속에서 먹으면 그 맛은 반감한다.
고급문화를 가진 사회일수록 색채의 델리커시도 현란하다. 세계의 패션을 지배하는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바로 그런 나라인 것은 더욱 인상적이다.
먼나라 얘기가 아니고, 요즘 우리 주변의 생활색채도 하루가 다르게 복잡·미묘해져 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출고 자동차색도 종래의 흑색 행렬에서 눈에 띄게 벗어나고 있는 것을볼수 있었다.
어느 자동차회사 승용차의 경우, 20%가 골드 토패즈(연한 황금색)였다고 한다. 그 다음이펄 실버(은색), 자메이카 블루(짙은 하늘색), 라이트 그레이(연한 회색), 샴페인색(연한 코피색)등의 순이었다. 검은색은 겨우 4%에 불과했다.
요즘 여성들의 색상선호를 보아도 그런 델리커시는 더 실감할수 있다. 블루, 베이지, 라이트 옐로, 그린등, 그야말로 색색이다. 적과 흑은 오히려 혐오하는 색깔로 밀려나고 있다.
빛깔은 마음을 말한다. 개인의 마음 뿐 아니라 그 민족, 그 사회의 마음까지도―. 파리와 런던이 다른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서울거리의 색채를 보면 이제우리 생활에도 미묘한 섭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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