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의 부동산 맥짚기] 분양시장에 대포통장 뜬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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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최영진 부동산전문기자

대구시가 지난 13일 부동산 투기방지 대책 회의를 갖었다. 다들 부동산 경기가 안 살아나 아우성인데 무슨 투기대책이냐고 의아해 할 게다. 대통령도 연두 기자회견에서 “소비심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얘기할 정도인데 말이다. 더욱이 정부는 최근 경기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부동산 개발 내용이 포함된 ‘투자활성화 방안’까지 내놓지 않았던가.

 이런 마당에 투기대책이라고 하니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수도권과 달리 지방 대도시의 아파트 시장은 매우 활기차다. 일부 인기 평형은 청약률이 300대1을 넘을 정도다.

 그렇더라도 무슨 일이 생겼길래 투기대책 회의까지 하게 됐을까.

 지난 연말에 분양한 ‘유림 노르웨이숲’이라는 아파트 때문이다. 평균 경쟁률이 무려 171대 1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전체 368가구 밖에 안되는 미니 단지다. 위치는 대구 전철역이 바로 붙어 있어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만 하다. 분양가도 3.3㎡당 8백만원 후반대이고 일부 평형은 발코니 확장비용을 포함해 9백만원 좀 넘는다. 다른 지역에 비해 싼 편이다. 그래서 서울을 비롯한 외지인들이 대거 청약에 가담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시세차익을 노린 가수요가 몰렸다는 말이다.

 문제는 최고 인기평형 당첨자 중에 같은 연락처가 10개가 나왔다는 것이다. 1인 1개 통장만 청약이 가능한데 어떻게 동일 연락처가 10개가 나올 수 있을까. 대포통장이 사용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래서 대구시는 서둘러 관계기관과 대책회의를 갖게 됐다.

 대구시 우동욱 건축주택과장은 “대책회의에서 나온 얘기는 대부분 중앙정부가 제도를 바꿔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같은날 분양한 수성 현대 아이파크에도 동일 연락처가 3개가 나온 것으로 알려져 대포통장의 파장은 클 것 같다.

 그동안 시세차익이 많은 곳은 당첨 확률이 높은 대포통장이 어김없이 등장했다는 말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2013년 하반기 이후 아파트 분양시장이 살아나면서 대포통장을 이용한 떳다방들의 투기가 성행했다. 이들은 돈을 주고 장기 무주택자이면서 가족수가 많은 특히 부모를 부양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접근해 청약통장을 수없이 만들었다. 이런 통장은 청약가점이 높아 당첨확률이 매우 높다. 이렇게 매집한 통장은 전국의 분양현장을 돌아다닌다. 당첨되면 바로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을 붙여 분양권을 되판다.웃돈이 안붙으면 계약을 하지 않는다. 이같은 떳다방은 수백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청약 경쟁률이 높아도 실제 계약이 생각보다 미진한 이유는 이런 가수요 때문이다.

 대한주택보증이 조사한 지난해 3분기 민간 아파트의 초기 계약률은 전국 평균 78.3%이고 청약 경쟁이 치열했던 부산·대구도 각각 73.5%, 65%에 그쳤다. 높은 경쟁률에 비해 계약 성적표는 초라한 편이다.

 그러나 엄동설한의 분양시장을 살려낸 것은 가수요다. 적당한 가수요는 활력소 역할을 하지만 넘치면 곤란하다.

 가수요로 활기를 찾은 분양시장은 이제는 가수요 투기를 걱정할 판이다.

최영진 부동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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