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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3) <제79화 육사졸업생들>(196)-대전으로의 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한강인도교 폭파로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가라앉기도 전에 약30분후 다시 서울 동쪽에서 또 오린지빛 불기둥이 치솟았다. 광나루의 광장교가 폭파된것이다. 생도들은 이 폭음이 북괴가 소련에서 지급받은 고성능 폭탄을 투하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새벽4시쯤 학교본부에서는 생도들에게 막연히 『한강이남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손관도소령은 각 중대의 전령을 집합해놓고 『적이 서울까지 진입한것같다. 우리가 이곳을 사수하는 일도 이젠 무의미해졌다. 각중대는 은밀히 진지를 이탈해 한강을 도하하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이때 한생도가 『집결지는 어디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질문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손소령은 무슨 말을 할수없는 형편이었다. 대대장 조암중령(군영출신)도 행방을 감춘지 오래였고 짐결지도 밝혀지지 않은 철수명령이 중대장에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서울이 적 수중에 떨어졌다더라』는 말 이외는 제대로 알려진 상황이 없었다.
철수명령이 중대장에서 소대장으로, 소대장에서 분대장에게 내려지자 어떤 분대는 중랑교를 지나 청량리로 들어갔고 어떤 분대는 망우리고개를 넘어 광나루쪽으로 갔다. 배짱 좋은 분대장은 분대원을 이끌고 학교로 되돌아가 내무반에 들러 정든 침대를 향해 고별인사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청량리로 들어갔던 분대는 적의 저격을 받아 동기생 몇명을 희생시킨뒤 뚝섬방면으로 도망쳐 한강을 겨우 건너기도 했다.
어떤 생도는 후퇴를 하느니 차라리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면서 학교앞 불암산으로 들어가기도 했다고한다.
행방이 묘연했던 생도대대장 조암중령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날 새벽 적탄이 학교앞 92고지에 날아들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상오9시쯤 공격이 뜸해진 다음 지프를 몰고 서울대공대 입구를 지나가다 능선에 숨어있던 적의 저격을 받자 차에서 내려 운전병과 함께 투항했다는 것이다.
훗날 조중령은 낙동강전선에서 아군이 북진할때 국군에 붙잡혀 군법회의에서 이적행위로 사형선고를 받아 처형됐다. 조중령이 사상이 불온해서 투항한것은 아닌것 같다며 조중령의 불명예스런 종말을 지금도 모이면 가끔 화제에 올리고 있다.
시흥으로 옮겨간 육군본부는 28일하오부터 후퇴병력이 늘어나자 김홍희장군을 시흥지구사령관으로 임명, 후퇴해온 장병들을 모아 급한대로 혼성부대를 편성해 한강방위선에 투입하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우선 장교들을 총동원, 아군의 주요 후퇴 도하지점인 뚝섬과 광장리일대에서 후퇴병을 수용했다. 29일하오 늦게까지 광장리에 집결한 생도수는 그럭 저럭 2백명에 달했다.
30일새벽 생도들은 4대의 트럭에 분승, 수원남쪽 고등동의 한 벽돌공장에 도착했다. 이준식교장이 생도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말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생도대는 7월1일 수원방어전투에 투입됐다가 2일상오10시 정식으로 대전이동 명령을 받았다. 오산에서 열차를 타기로하고 행군을 시작했다.
3시간정도 행군을 하다 길옆에 주저앉아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을때 적의 야크기 2대가 나타나 기총사격을 퍼 부었다. 생도들은 민첩하게 도로 양쪽 논바닥으로 몸을 엎드렸다. 북쪽으로 선회하던 야크기는 또 생도들에게 사격을 가해 왔다. 생도들은 일제히 대공사격을 했다. 적기1대가 꼬리에 검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들판에 추락, 폭발했다. 생도대의 희생은 다행히 1명도 없었다. 남은 야크기1대가 북쪽으로 자취를 감추자 생도들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트기 편대가 공격을 해 왔다. 바로 「호주쌕쌕이」였다. 우군기여서 대공사적을 할 수도 없어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다시 도로 옆에 엎드려 공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4대의 제트기는 잠시후 기수를 돌려 사라졌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제트기 조종사들은 낙동강을 한강으로 잘못 알고 낙동강이북에 있던 우리 장병들을 적으로 오인해 사격했다는 것이다.
위기를 모면한 생도대는 오산근처 서정리역에서 화물열차를 타고 밤7시가 넘어 대전에 도착했다.
원동국민학교에 짐을 푼 생도들은 1주일만에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모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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