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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바닷 속 잡동사니 모아놨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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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채바다씨가 바다박물관에 전시된 태왁 등 어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뱃길 탐험가로 더 잘 알려진 제주 출신의 향토시인 채바다(61)씨가 10년 동안 바다를 떠돌아다니며 수집한 잡동사니들을 모아 '바다박물관'을 만들었다.

성산 일출봉이 눈 앞에 펼쳐지는 시흥리 포구에 9일 문을 연 바다박물관은 70평 규모의 전시실에 해녀들이 물질할 때 쓰는 태왁 등 전통 어구부터 프로펠러.닻 등 현대선박의 부속품까지 150여 점을 진열해 놓았다. 해안에 버려지거나 파도에 밀려온 폐(廢)그물과 부표 등 쓰레기도 '제주로 밀려온 문명'이라는 차원에서 당당히 전시품 목록에 올렸다.

대학(한양대 화학공학과) 졸업 후 서울에서 화학약품.기자재 판매점을 하던 그는 1991년 가게를 아내에게 넘기고 가족들을 서울에 남겨둔 채 홀로 고향인 제주 성산포로 내려왔다. 바다를 무대로 살아온 옛 제주 선인들의 발자취를 확인해보겠다는 생각에서다. 어릴 때부터 이 일을 마음속에 담고 살아왔다는 그는 그때 자신의 이름도 '채길웅'에서'채바다'로 바꿨다.

그는 제주로 오자마자 제주의 전통 배인 '떼배'에 매달렸다. 삼나무를 뗏목처럼 엮어 만든 이 배는 제주에서 고대부터 연안 어로나 해조 채취에 쓰여왔다. 그는 이 떼배를 이용해 북태평양 한 가운데 우뚝 선 제주섬 사람들이 외부 세계와 문명을 주고 받았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 그는 직접 떼배를 타고 한.일간 바닷길 탐험에 나섰다. 96년 제주~일본간 첫 항해를 시작으로 2001년 전남 영암에서 일본 후쿠오카의 가라쓰(唐津)항까지 400㎞ 뱃길을 돛과 노의 힘만으로 탐험했다. 벡제 왕인 박사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주변에선 이런 채씨를 '괴짜' 취급을 했다. 그러나 그는 당당하다. 그가 바다 탐험을 하며 건져 올린 바다박물관 전시품들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성산포 앞바다의 우도 부근에서 건져 올렸다는 낡은 카누를 두고, "아프리카의 물길이 이곳까지 닿은 걸로 보아 문명 교류가 있지 않았을까 추정된다"고 했다.

자신의 바다 탐험을 4권의 시집으로 엮어내기도 한 그는 "제주가 한낱 변방의 섬이 아니라 바닷길을 통한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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