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가에 부는 과거사 반성 바람] "독재·권위주의 시대 침묵한 점 부끄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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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이 순간 묵묵히 봉사한 무명 용사는커녕 후회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사법권의 독립이 보장되고, 법관과 법원의 권위가 존중돼야 한다는 등의 당연한 말조차 남기고 갈 자격이 없음을 솔직히 고백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반성 표명은 후배 법관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곤 했던 과거 대법관들의 퇴임사와도 대비된다. 특히 사법부의 과거사 반성 문제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유 대법관은 국민의 정부 때인 1999년 10월 대법관에 발탁됐으며, 2000년 7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현대그룹에서 대북사업 협조 대가로 150억원을 받은 혐의(뇌물)로 구속기소된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건에서 주심을 맡아 징역 12년과 추징금 148억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고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법적 분쟁에 휘말린 국민에게 마땅히 했어야 할 봉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당사자의 주장 청취를 시혜적인 것으로 착각하거나 장황하다고 짜증냈고, 법관의 권위는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고 강변했다"고 자신의 35년 법관 생활을 반성했다.

유 대법관은 "국민 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청산하고 진정 국민을 섬기는 법원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새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법부를 탄생시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법원을 떠나려 한다"며 퇴임사를 끝맺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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