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소외당하는 시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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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의 시어머니가 가장 불행한 세대라는 말을 흔히 한다. 전통적 유교사상 속에서 자라 삼종지도의 길을 걸어온 그들은 노년을 위해 투자한 것이라곤 자녀들에게 스스로의 일생을 바쳐버린 것 밖에 없다.
물질적으로 남은 것이 없는 그들은 핵가족의 거센 물결에 밀려 소외감 속에서 노년을 보낸다.
『돈이 효자를 낳지요. 어디 우리가 젊을 때 그런걸 알았읍니까.』
『누구든 어떤 입장에 스스로 처해봐야 그걸 안다는 말이 있읍니다만 요즘 젊은이들은 늙은이 마음을 전혀 알려고도 않는 것 같아요.』
시어머니의 불만들은 이렇게 하여 이어진다.
지난해 한국부인희가 주관했던 건전가정 심포지엄에서 이대 최신덕 교수는 시어머니의 고민을 동거문제, 가정 안에서의 주도권 행사, 가정 안에서의 역할문제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81년 현재 기혼의 아들 부부와 동거하는 시어머니는 54.7%, 동거를 희망하는 시어머니가 60.5%인데 비해 며느리는 29.6%에 불과했다.
『5남매를 키워 모두 출가시켰는데 어느 아들이든 한 집만이라도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막내마저 따로 살겠다고 나가버리고 나니 어찌 그리 허무한지-.』
60대의 시어머니 박정환씨는 요즘 과연 내가 5남매를 낳아 기른 어머니인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라고 말한다.
박씨 연령의 시어머니들은 『자식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젊은이들이 너무 몰라준다』고 푸념들이다.
시부모와의 별거를 원하는 율은 연령이 낮아질수록 높아진다. 따라서 앞으로의 시부모들은 당연히 그들만의 노년 핵가족을 계획하고 있어야 할 시대가 되었다.
동거를 하더라도 가정 안에서의 주도권 문제가 시비의 대상이 된다. 안방차지와 돈관리가 바로 가정의 주도권과 연결되는 소지들이다.
시어머니는 안방에서 물러나게 될 때, 그리고 가정경제권이 며느리 손으로 넘어갈 때 가장 큰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50대의 시어머니 양완순씨의 경우 외아들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양씨는 비록 한울타리 안에 살더라도 아들의 가정이 그래도 독립성을 가지고 그들 나름대로의 자유를 누리기를 바라는 대신 시부모도 그들 나름대로의 자유와 독립성을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산문제도 시부모가 죽는 날까지는 자신이 재산권을 가지고 행사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양씨는 또 며느리를 딸같이 여기라는 말이 있지만 며느리는 어디까지나 며느리이며 딸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딸로 여길 때 그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이론이다.
시부모를 모시고 있으며 얼마 안 있어 자신도 시어머니가 될 40대 주부 조의기씨의 의식은 50, 60대 시어머니의 생각과 사뭇 다르다. 한편 20대나 30대와도 달라 전통적인 시어머니상에 대해 상당한 이해도를 보여준다.
『지금 생각하면 지난날의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 있었던 감정적인 대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다시 그 시절이 돌아온다면 시어머니에게 보다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조씨의 말.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어차피 남으로 같이 살면 부딪치게 마련이어서 오히려 떨어져 살며 정을 깊이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30대의 며느리 김영민씨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딸로 여긴다는 것은 일종의 위선이라고 지적한다. 같이 살든 안살든 지나치게 친밀한 것은 자칫 오해의 소지가 되며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타인의 입장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 김씨 역시 시부모와의 동거는 반대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한국가정법률 상담소의 시어머니학교에서는 시어머니들에게 수칙 몇가지를 가르친다. △며느리에게 친딸의 이미지를 기대말라 △남과의 조화를 성급하게 이루려 하지말라 △가슴 속에 있는 것을 터놓고 이야기해보도록하라 △미워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불행케하는 것이다 등.
81년 일본의 노년사희 과학회에서 내놓은 시어머니 수칙은 보다 구체적이다.
△가사분담 후 자기 것만에 관심을 가져라 △가계는 며느리에게 가능한한 빨리 넘기는게 좋다 △아들이 좋아하는 요리의 요리법을 며느리에게 가르쳐주고 자신은 그 요리를 하지말라 △아들의 뒷바라지와 손자녀의 교육은 전적으로 며느리에게 일임하라 △가능하면 외출을 많이 하고 자기생활을 갖도록 노력하라 △며느리에게 되도록 칭찬을 많이 하고 취미를 가지며 제2의 청춘을 얻도록 하라는 둥이다.
현대의 시어머니가 어느 시대의 시어머니 보다 더욱 소외감을 느끼고 변화하는 시대에 시달리고 있음은 누구나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추어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또한 예부터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았는데-』라고 옛날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가정이 보다 평화로와질 수 있는 방법을 시어머니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도 바람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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