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표시제, 잘 안 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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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가격표시제는 하루아침에 완벽하게 실시하기보다 지금처럼 단계적으로 계몽과 유인을 방께 제공하는 방식으로 실천하는 편이 효과가 있다. 상거래 관습이란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도 어렵거니와 상품과 시장구조가·아직도 그것을 수용하기 어려운 분야도 남아있기 때문에 가격표시제를 성급히 전면 확대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공산품처럼 유통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거나 슈퍼 등 근대화된 유통시장이 점차 확산되면서 가격표시도 서서히 정착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에 정부가 확대 적용키로 결정한 가격표시 대상업종은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상가지역·연쇄점·슈퍼마키트로 넓히고 금은방·구둣방·안경점등 전문점에도 확대 지정했다. 이에 따라 가격표시대상업소는 백화점·쇼핑센터2천 개소, 연쇄점4천5백 개소, 일반소매시장 7천 개소 등으로 모두 1만4천여 업소가 추가됨으로써 이미 지정된 1만6천여 업소를 포함하면 3만여 개소로 늘어난다.
가격표시제의 여행은 엄밀히 따질 때 시장경쟁의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을 경우 오히려 소비자에게 불리할 수도 있고 유통업자에게도 불이익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시장의 유기적인 신축성을 잃게 만들어 원활한 유통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물자, 서비스의 유통량이 급증하는 추세에서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근대화하지 않은 채 방치한다면 그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커질 것 또한 분명하다.
가격표시제를 독려하고 유통근대화에 여러 가지 정책적 역점을 두어온 결과 이제 대도시를 중심한 주요 유통시장은 웬 만큼씩 탈바꿈을 이룩했고 가격표시제도 보급이 크게 확산된바 있다. 이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경제적 실익이 수반되지 않는 독려나 강제는 반발을 불러일으키거나 형식적 표시에 그치게 만들기 쉽다.
가격표시가 잘 안 되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역시 보상과 징세를 둘러싼 부담증가의 우려 때문이므로 적절한 조세경감의 유인을 제공하면 가격표시의 확대는 훨씬 빨리 이루어질 것이다.
가격표시 업소 중에서도 등급을 두어 우량한 업소일수록 유인과 혜택을 높이고, 반면 불량 또는 위반업소도 그 정도에 따라 적절한 불이익을 제공, 유도와 단속을 함께 병행해 가는 것이 실효가 높을 것이다.
정부는 가격표시제 2차 확대에서 지방자치단체와 상공회의소·소비자단체로 구성되는 감시반을 편성, 수시로 위반업소를 적발키로 했으나 이 같은 단속 또는 적발보다는 역시 우량업소에 대한 실질적 유인의 제공이 더 효과적이므로 관계부처간 협의로 실효 있는 유인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역시 소비자들이 쥐고있다. 유통시장 정상화의 가장 큰 역할은 소비자들이므로 가격표시를 둘러싼 문제 뿐 아니라 모든 시장구조 안에서 나타나는 비합리적·불법적 시장행태에 대해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하고 시정해 가야할 책임을 지고 있다.
행정부와 긴밀히 협조하여 소비자권익이 각 단계의 시장에서 두루 존중되는 풍토가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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