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문제 평화적 해결에 힘 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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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올해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노벨평화상이 반핵 활동에 공헌한 개인.단체에 돌아갈 것이란 예측이 무성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의 수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컸다는 얘기다.

노벨위원회는 국제사회에서 핵 에너지의 군사적 이용을 막고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평화적 목적에 사용되는 데 노력한 공로를 평가했다. 여기에는 군축 노력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핵무기가 테러단체에 흘러갈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IAEA를 중심으로 핵무기의 실제적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북한과 이란 핵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된 상황에서 IAEA의 협상력에 힘을 실어주려는 뜻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엘바라데이 총장은 최근 몇 년간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지속해왔다. 미국이 2년 전 이라크를 침공하기 직전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며 "미국과 유엔은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말고 좀 더 시간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해 미국 측과 정면 충돌했다.

최근엔 이란 핵문제에 강경한 미국과 달리 외교적.평화적 해결책을 거듭 강조해 마찰을 빚었다. 미국은 올해 두 번째 임기가 끝나는 엘바라데이 총장을 퇴진시키고 새 총장을 세우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엘바라데이 총장은 이날 수상소감에서도 "우리의 업무에 많은 사람의 압도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이번 수상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라'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며 미국의 압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올레 단볼트 모에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엘바라데이 총장에게 상을 주는 게 미국에 대한 암시적 비난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엘바라데이 총장의 수상을 축하한다"며 "미국 정부는 핵 비확산을 위해 IAEA와 함께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IAEA에 대해서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큼 핵의 평화적 이용 분야에서 공로를 세웠느냐는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은 물론 일부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도 신뢰를 받지 못했던 IAEA와 엘바라데이 총장이 수상한 데 대해 일각에서 '노벨평화상 무용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시상식은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거행된다.

◆ 엘바라데이 총장과 IAEA=이집트 외교관 출신인 엘바라데이는 카이로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74년 미국 뉴욕대에서 국제법 박사 학위를 받고 80년 유엔으로 옮겨 안보.군축.핵에너지 분야에서 일해왔다. 84년 IAEA에 합류했으며 93년 IAEA 대외관계 담당 부사무총장을 지냈다. 97년 12월 한스 블릭스 전 사무총장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뒤 지난달 3선에 성공했다.

IAEA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57년 창설된 국제기구. 본부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다. 핵무기가 없는 국가들이 핵 연료를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하는 것을 막는 임무를 수행해왔다. 각국의 핵 연료 사용 내역을 철저히 관리하는 한편, 의심이 가는 국가에 대해서는 현장사찰을 실시해왔다. 특별 사찰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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