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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들의 돌 직구

중앙일보

입력

 
“수능 쉽게 내면 입시 부담이 준다고요? 난이도가 낮다고 학생이 공부 안하겠어요. 오히려 만점 받기 위한 공부, 실수 덜하는 연습만 더 하게 되죠.”(이태수ㆍ서울고 3학년)

“학교 선생님들도 ‘대학 갈려면 (시험) 패턴을 외워야 한다’고 해요. 수능은 사실 암기력 테스트이라는 말이죠.”(정주훈ㆍ서강대 정치외교 1학년)

19일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현행 수능와 정부 정책을 향해 던진 ‘돌직구’다. 이날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수능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안민석 의원)는 고3 수험생, 대학 1학년 등 학생 3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학입시개혁, 수험생이 던지는 돌직구 간담회’를 개최했다. 정부의 수능 체제 개편에 앞서 실제 수능을 본 학생의 생각을 직접 듣겠다는 취지였다.

학생들은 수험생. 힉교교사가 문제풀이·암기 위주의 교육에 매달리는 주된 원인이 수능 탓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수능을 치른 서울 대진고 류종오씨는 “한 가지 일에 1만 시간 이상 몰두하면 얻는 게 많고들 하는데 수능 공부는 1만 시간 넘게 해도 도움되는 게 없다. 누군가 답을 써놓은 걸 외우고만 있다”고 밝혔다. 2014학년도 대입 수능을 쳤던 이지현(서강대 정치외교 1학년)씨는 “수능을 위해 배우는 걸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수능 준비하는 중에 뭔가 새로운 걸 배운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대학에서 필요한 능력을 얻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1학년 이대엽씨는 “대학에 와보니 글쓰기, 말하기, 듣기가 중요하던데 수능 공부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오히려 수능 때문에 공부에 대한 흥미만 잃었다”고 꼬집었다.

EBS 연계 출제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올해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조승희(김포외고 졸업)씨는 “학원 강사는 물론 재수생 사이에서도 ‘영어를 잘하려면 EBS를 공부하면 안된다’라는 말이 나온다”고 소개했다. 그는 “과거 10년 간 수능 영어 기출문제를 본 적 있는데, EBS 연계를 하지 않던 때의 영어 문제가 보다 훌륭하고 진짜 실력을 반영할 수 있도록 출제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서울 일반고에 재학 중인 예비 수험생 김경선(고2)씨도 “EBS 영어 지문을 보면 일관성이 별로 없는 7~8개 문장이 나오는데, 이걸 푼다고 내 영어독해 실력이 늘어날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난이도 조정 실패에 대한 불만도 이어졌다. 다음달 서울 문일고를 졸업하는 한 수험생은 “모의평가에선 모두 국영수 모두 1등급이 나왔는데, 실제 수능에선 4등급이 나온 과목도 있다”며“수능이 들쭉날쭉하면 수험생은 한층 불안해지고, 그래서 사교육 수요가 더 늘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도입된 선행학습금지법 탓에 학교에서 수능 준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청주 대성고 2학년 연승주씨는 “새로운 법 때문에 우리 학교는 수능 한달 전에야 수학 진도가 끝난다. 사교육이 아니고서는 수능 수학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게 됐다”고 꼬집었다.

학생들의 불만은 입시 제도 전반으로 옮겨갔다. 지난해 논술전형으로 수도권 소재 대학에 진학했던 임지현씨는“‘어떻게 해야 논술을 준비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고교 후배들에게 어쩔 수 없이 ‘책ㆍ신문 읽기보다 학원 수업이 낫다’고 말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인하대 의예과에 입학 예정인 김희원씨는 “학생들에게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다. 나도 왜 어느 학교는 붙고 다른 학교는 떨어졌는지 이유초차 가늠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일반고 학생들은 대입을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특목고ㆍ자사고에 비해 열악하다고 밝혔다. 숭실대에 합격한 일반고 학생은 “상위권 대학의 수시 전형 중엔 일반고에선 개설도 잘 안되는 전문교과 이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을 주로 뽑으려는 심산 아니냐”고 비판했다. 청주의 한 일반고 출신 재수생은 “내가 졸업한 고교는 과학중점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이 ‘기억이 나지 않느다’며 과학I 수준으로만 가르치는 분들이 있었다. 교사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날 안민석 수능특별대책위원장은 “오늘 나온 학생 의견 등을 바탕으로 1월말까지 야당 차원에서 개선안을 만든 뒤 2월부터 전국을 순회하는 ‘교육만민공공회’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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