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새지도(10)서열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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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해가는 재계의 모습을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영토분할을 둘러싼 영고성쇄의 치열한 경쟁이지만 그 기업을 일으키고 경영하는 기업인의 입장에서 보면 창업과 수성의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다.
재계를 움직여가는 원동력이라고 할 기업인들의 이같은 노력은 때로는 당대에 그치기도 하고, 때로는 핏줄을 타고 혹은 자신이 길러낸 전문경영인을 통해 대를 잇기도 한다.
또 이들은 재계라는 한 테두리안에서 이익을 함께 하고 친교를 나누며 혈연·학연·지연등을 통해 인맥을 형성한다.
이들의 공식적인 모임이 곧 경제단체다. 수 많은 법정·임의 단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고 규모가 큰 전경련·대한상의· 무협· 중소기협중앙회를 따로 꼽아 경제4단체라 부른다.
재계 인맥의 원류는 특히 전경련에 그 굵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경제4단체중에서도 특히 전경련은 회원수는 적지만 가장 재력 있고 영향력 있는 재계인사들을 망라하고 있고 또 유일한 임의단체이며 철저한 이익집단이라는 점에서 재계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다른 경제단체의 장은 실질적으로 위로부터 임명되어 내려오는 경우가 있지만 전경련만은 자신들이 뽐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기업의 세계에 뛰어들어 부의성을 쌓아 올리고 어느 정도 관록이 붙으면 전경련의 회원이 됨으로써 재계에 비로소 데뷔할 수 있고 재력과 관록이 쌓임에 따라 중진회원으로서의 대접도 받고 재계의 성좌라 할 수 있는 전경련회장단의 한자리를 차지해 재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같은 과정을 차례로 밟아 오늘날 재계의 성좌에 오른 재성들의 모임이 바로 전경련의 중진회의다.
전경련의 정관에 규정된 공식적인 의결기구는 보름 2∼3달에 한번씩 열려 예산·조직·대정부건의·주요사업등을 심의하는 이사회와 매년 2월에 한번씩 열려 회장·임원을 선임하고 주요사업·예산안을 최종적으로 심의하는 정기총회, 그리고 임시총회가 있을 뿐이지만 사실상의 의사결정은 평균 한달에 한번정도 열리는 회장단회의, 또는 중진회의와 같은 비공식회의에서 이루어진다.
그만큼 전경련의 회장단 회의·중진회의는 재계의 의사를 결정하는 비중있는 모임으로서 주목받게 된다. 재계총리라 불릴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 전경련회장의 선임을 사전조정하는 일에서부터 그 때 그 때의 정치·경제적인 이슈에 대한 재계의 중지를 모아 통일된 의사를 결정하는 일이 모두 중진회의에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재계의 각료회의라 할만하다.
현재 전경련의 중진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 재계인사는 약 40명 안팎이다. 중진회의에 참석할 자격은 선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자격이 규정돼 있는 것드 아니며 다만 스스로의 재력과 관록에 의해서 자연스레 결정된다.
또 중진회의의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발언권에서부터 앉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엄격한 서열이 자연스레 결정된다.
어찌보면 전경련은 모든 임원선임과 자격·서열결정이 양보와 고사, 추대에 의해 걸정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전경련의 중진회의를 구성하고 있는 멤버들은 거의가 창업세대다. 또 60대와 70대가 대부분이다. 바로 이들이 아직도 한국재계를 대표하고 있는 주류다.
중진회의 멤버중 창업주가 아닌 재계인사로는 유창순 롯데그룹 고문, 조우동 삼성 중공업회장, 송인상 동양나이론회장, 김진형 한국장기신용은행고문, 김종대 대전피혁회장, 우용해 (주)쌍룡회장등의 관계·김융계·정계 출신 전문경영인들이 있고 대그룹의 오너지만 창업 2세로서 구자경 럭키금성회장, 김상홍 삼양사회장, 그리고 창업 1·5세로 불리는 이동찬코오롱그룹회장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이 유일하게 40대의 나이로 재계 중진에 올라 있다.
한국 재계인맥의 원류를 이루고 있는 이들 전경련 중진회의 멤버들은 한달에 한번정도 여의도전경련회관 또는 시내 음식점등에서 모임을 갖고 친교를 나누며 자연스런 분위기속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논의한다.
그러나 매번 모든 중진회외 멤버들이 참석하는 것은 아니며 주로 빠짐없이 착석하는 멤버들은 거의 고정돼 있다.
거의 고정적으로 참석하는 중진들로는 정주영 김용완 원용석 김룡주 이원순 조우동 구자경 정인욱 송인상 양정모 박룡학 김상홍 최종환 신덕균 최태섭 김진형 이동찬 김종대 서성환 김룡성 우룡해 유찬우 이필석씨등을 꼽을 수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발언을 많이 하고 좌중을 이끌어가는 재계중진은 정주영 김용완 이원순원용석 최태섭 신덕균 정인욱 송인상 구자경 김종대 박룡학 이동찬씨등을 들을 수 있다.
전경련을 중심으로한 이같은 한국 재계중진들의 모임도 재계의 연륜이 쌓이면서 최근 여러가지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이후 재계 중진 거의 모두가 참가해 자주 산업시찰 길에 올라 첨단기술의 현장도 둘러보며 새로운 화합 무드를 찾은 것이나 올초 전경련 총회에서 원용석부회장을 고문으로 추대하고 김상홍·최종환·최종신씨등 중진으로선 비교적 젊다고 할 수 있는 50대부회장을새로 선임해 서서히 세대교체의 틀을 잡아 나가기 시작한 것이 그러한 움직임이다.
또 재계중진들의 주된 관심은 요즘 민간주도 경제하에서의 대외경협강화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기업홍보에 모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직중진의 서열에는 올라 있지 못하지만 창업 2세와 각 그룹의 핵심적인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한 40대「예비중진」들의 모임도 지난해부터는 역시 전경련을 축으로 눈에 띄게 활성화되고 있다.
재계의 새로운 흐름은 이제 그 인맥에서도 차츰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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