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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美 패권 인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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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13일 내놓은 2003년 연례보고서에서 미국 중심의 '단극(單極.unipolarity)'체제가 세계평화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더욱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유일 패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과 미국 간 외교적 줄다리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IISS가 분석한 이라크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정리한다.

◆"미국과 유럽은 철학이 다르다"=이라크전 과정에서 드러난 현상 가운데 가장 주목할 일은 서방 국가들의 내분이다. 분열의 명분은 유엔의 역할이었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신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미국의 일방통행이다. 미국은 혼자 결정해 놓고 다른 나라에 따라오라고 강요했다. 유엔 역시 미국이 정한 수순을 밟기 위한 형식적 절차로 간주됐다.

미국은 쿠웨이트에 병력을 배치하면서, 자신의 군사 일정에 맞춰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어내고자 했다. 반대로 미국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인 것은 프랑스 등의 '무조건 반대' 이미지다. "무조건 비토하겠다"는 프랑스의 선언은 미국의 뒷다리를 잡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철학과 전략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적어도 9.11 이후 테러에 대해선 '선제공격'전략을 택했다. 전통적인 국제법에 따른 복잡한 논란이나 절차를 거치기엔 상황이 급박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전통적인 정책, 즉 '무력사용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철학을 버리지 않고 있다. 따라서 유럽은 '선제공격'보다 '예방외교(preventive diplomacy)'를 강조한다. 프랑스가 보기에 미국은 외교를 모르는 셈이다.

◆"유럽은 미국의 패권 인정해야"=문제는 서방 세계의 분열이 세계평화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유럽 일부 국가가 희망하는 '다극(多極.multipolarity)'체제는 환상이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제사회에서 주도권의 분열은 경쟁과 갈등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는 강대국이 아니라 힘없는 주변국이 희생돼온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유럽이 미국과 같이 참여하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통해 협력하는 길이다.

◆"이라크전의 승패는 팔레스타인에 달렸다"=군사적인 차원에서 이라크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궁극적인 성공 여부는 "테러가 사라지느냐"에 달렸다.

현재까지는 실패에 가깝다. 전쟁이 오히려 자살폭탄 지원자를 늘려 놓은 꼴이다. 관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이다.

조지 W 부시가 내놓은 로드맵은 2000년 빌 클린턴이 내놓은 안보다 구체적이지 못하다. 지속적인 외교노력이 필요한데, 불행히도 올 연말이면 미국은 대선 국면으로 넘어간다.

◆"북.미 대화는 당분간 이어질듯"=베이징(北京) 3자회담은 북한과 미국이 한발씩 물러선 결과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어차피 전쟁은 주변국들 때문에 곤란하고, 봉쇄나 추가 제재는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어렵지만 외교적 노력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추가 회담에 응할 것이다. 그렇지만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외교적 줄다리기가 오래 갈 것으로 보인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런던에 본부를 둔 군사 분야의 민간 전문 싱크탱크다. 1958년 설립됐으며 지역별.분야별 전문가들이 전세계 군사동향을 연구 발표한다. 워싱턴과 싱가포르에도 지부가 만들어져 있다. 이 연구소가 매년 발간하는 군사전략 보고서인 '밀리터리 밸런스'는 각국의 군사력을 비교하는 실증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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