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관한 인간의 새로운 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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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로운 미국의 종이 조형전」이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전시되고 있다.(13일까지) 여러가지로 뜻있는 전시라고 생각된다. 우선 전시의 내용이 향기롭고 그윽했으며, 이러한 전시를 운영하는 미국의 미술행정의 원숙한 조직력등이 인상적인 것이었다. 미술을 창조하는 입장에선 그들의 성실하고 진지한 제작태도를 감상할 수 있었으며, 이것을 사회적교섭의 마당에서 일반화하는 민주적인 전시효과를 배울수 있었다. 작품과 관중의 접촉이 매우 자연스럽게 맺어지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세계를 순회하면서 미국의 새로운 종이조형의 미술을 알린다는 목적으로 조직된 이 전시는「제인·파머」여사가 기획했으며 3년이상의 준비기간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처음 l백여명이 넘는 출품 대상작가들의 리스트가 떠올랐으나 결국 20명의 작가들로 결정되었다.
전시현장에 참가한「찰즈·힐거」와「카로린·그린월드」씨등 두 작가는 땀으로 흠뻑 젖어가면서 이틀간이나 전시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창조도 일이고 전시도 일이며 일이 곧 미술이라고 건강하게 웃었다.
종이가 미술의 표현수단으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건 작금의 세계적 현상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인간의 기원으로까지 소급된다. 그것은『문풍지가 울면 계절이 바뀐다』는 우리 선조들의 생활기록하고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얀 창호지가 붉게 물들면 아침이 시작되고, 거기 호롱불빛의 그림자가 비치면 삶의 보금자리로 되찾아가는 생할의 기호등이 모두 종이의 덕분인 것이었다. 하얀 화선지를 대청마루위에 펴놓고 듬뿍 붓끝에 먹물을 묻히는 사대부의 관조는 그 절정의 광경이다.
이처럼 종이는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맺어주는 기본의 형식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식의 구조를 환기하고 있다. 한장의 종이…. 한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얇디얇은 이 단면속에 인간의 오만가지 우여곡절들이 깊게 깊게 숨겨져있다. 「새로운 종이조형」이란 종이에 관한 인간의 새로운 의식을 뜻한다.
이것은 사물을 새로운 각도에서 항시 새롭게 인식해온 서양적인 아나포릭한 상승의식의 하나의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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