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멀리서-「문제학생」명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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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교복의 자율화및 개방화등 일련의 사회정책적 변화가 있는 가운데 나타난 대구 디스코홀의 참사와, 최근에 보도되고 있는 학생폭력 사건등으로 청소년문제가 몇주째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길거리에서 용돈·시계·신발등을 빼앗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중고등 학생의 수가 한학급에도 여러명씩이나 된다는 보도가 있어 새로운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경찰에서는 학생폭력과 학교주변 불량배들의 집중적인 단속에 나선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또 경찰에서는 학생폭력을 근절하기 위하여 서울시내의 각 중·고등학교에 문제학생이나 불량학생·불량서클 가입학생들의 명단을 제출하도록 요구하였으나 학교측에서 이에 선뜻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소년 범죄나 학생폭력의 최근의 심각성으로 보아 경찰이 이의 집중적인 단속에 나선것은 다행한 일로 생각된다.
학생폭력이나 청소년 비행을 근절하고 순진한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학교와 경찰이 서로 협동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명백한 일이다.
이처럼 청소년폭력 근절을 위한 경찰의 활동과 관심을 환영하면서도 경찰이 각 학교에 대하여 불량학생의 명단을 제출하도록 요구한데 대해서는 교육적으로 고려해 보아야할 몇가지 문제가 있는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학교가 교육기관이며, 학교에서 하는 모든 일은 교육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잊어서는 안될 줄로 안다. 교육적이라는 말은 학생들의 행동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되도록 지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인격적 감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제력보다는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존경과 상호의 신뢰다. 존경과 신뢰는 교사가 하는일이 옳다는 것을 학생들이 마음 속으로부터 믿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서 그대로 실천하려고 하는 태도인 것이다. 존경과 상호신뢰가 없으면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할수 없다.
그런데 교사가 문제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제자들의 명단을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교사와 학생의 존경이나 신뢰에 금이 가게할 우려가 있다. 교사는 우수한 학생은 우수한대로 지도하고, 문제가 있는 학생은 또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위해 지도하는 것이 그의 임무인 것이다. 지도 과정에서는 좋은 제자와 나쁜 제자의 구별이 있을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자기의 이름이 경찰에 제출된 것을 알게되는 경우, 그 학생이 학교에 대해서 갖는 존경심이나 신뢰는 크게 감소하게될 것이다.
또 학교측에서도 문제학생이나 불량학생을 명백하게 규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분명한 범죄를 저지른 학생은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하겠지만 그러한 자료는 학교보다도 경찰이 이미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불량학생이나 문제학생의 규정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어떤 학생을「문제학생」 이라고 낙인 찍는것은 정말로 그학생을 문제학생으로 만들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여러 심리학자들이나 사회문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긍정적인 자아의식과 부정적인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의식에 맞추어서 행동이 발달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긍정적인 자아의식을 갖도록 해야 건전한 청소년으로 성장해간다는것이 교육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 구분하고 있는 비행청소년은 법률을 명백하게 위반한 범죄청소년, 범죄의 우려가 있는 우범청소년, 음주·흡연 부녀희롱등의 불량행위 청소년등 크게 보면 셋으로 나눌수 있다. 이중에서 우범소년이나 불량소년등은 문제소년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선도하는것보다는 그렇지 않고 선도하는것이 훨씬 바람직하고 또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에 미국 캐나다등 외국에서는 범죄청소년도 교정시설에서 교정교육을 받게하지않고 정신과 의사·심리학자·사회사업가등의 특수한 프로그램에 의하여 정상적인 사람과 같은 생활을 하게 하면서 원래의 생활로 되돌아 오도록 치료하고 있는것이 하나의 추세다.
교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청소년비행도 있지만 불량행위에 속하는 많은 청소년들의탈선행위는 청소년기의 통과와 함께 사라져가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가지고있는 것이 청소년비행의 특징이다. 또 많은 청소년들의 탈선은 가치관의 미정립, 판단력의 미숙, 우쭐대고 싶은 일시적인 과오, 기성사회의 부도덕성등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현대국가가 청소년비행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이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때문일 것이다.
청소년폭력을 단속하는 경찰의 활동은 환영하지만 학교안에서의 학생지도는 교사들이 할수있는데까지 지도하게하고, 교사들의 힘이 미치지않는 학교밖에서의 폭력을 단속의 대상으로 하는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학교의 문제학생 명단 제출에서 얻는것과 잃는것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차경수<서울대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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