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건강] 가슴 빈 자리, 웃으니 채워지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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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에 걸린 여성은 세 번 운다. 한 번은 암에 걸린 것을 알았을 때, 또 한 번은 수술을 받은 뒤 밋밋해진 가슴을 보고,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재발했다는 통고를 받고 나서 눈물을 흘린다.연극인이면서 탤런트인 이주실(61)씨. 수많은 연기상을 받으며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던 그녀도 인생 후반기에 세 번을 울었다.49세에 암 통고를 받고, 4년 뒤인 53세에 재발을 겪으면서 그녀가 쏟은 눈물은 가위 한 초롱은 됐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울 틈이 없다. 암 절제술 후 12년이 지난 요즘, 그녀의 암 극복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고종관 건강팀장

*** '암과 함께 놀기(Living with a cancer)'

"투병생활이 한창일 때였지요. 첫 술 밥을 뜰 때면 항상 '이 첫 수저, 암세포 너 먹어라', 두 번째 수저를 뜰 때면'나머지는 정상세포 너희 먹고 싸워서 이겨다오'라고 중얼거렸지요. 마음이 약해지면 결국 암세포가 힘을 얻어 암에 먹히고 맙니다. 암을 이기기 위해서는 암을 가지고 놀 줄 알아야 합니다."

이주실씨는 즐거운 생각만을 머릿속에 담고 산다. 어느 하루도 부정적인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시의 힘겨운 치료 과정조차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런 긍정적인 사고와 삶에 대한 애착, 그리고 그녀의 웃음, 이것이 바로 그녀를 유방암에서 벗어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된 셈이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정도로 잘 웃어요. 목젖이 비틀어지도록 웃으면 사람들이 물어요.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그럴 때면 오늘 하루를 통째로 선물 받았는데 어떻게 안 좋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죠." 이것이 그녀를 '유방암을 극복한 웃음 바이러스 전도사'라 부르는 이유다.

*** 적극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라

하루하루를 선물로 받는 이주실씨는 그 누구보다도 바쁘다.

충북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 대학원(임상사회심리학 전공)에서는 학생으로, KBS 드라마 '황금사과'에서는 연기자로, 연극동아리 '그린비'에선 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그녀가 만든 그린비 단원들은 3월 장애인을 위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공연했다.

"트랩 대령의 약혼녀 역할을 맡은 정신지체 아이와, 트랩 대령의 자녀 역을 맡은 시각장애 아이가 열연했는데 공연이 끝났을 때 모두 부둥켜 안고 울었어요."

유방암에 걸리고 나서 그녀의 생활습관도 확 바뀌었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청량음료는 피하고, 좋아하던 커피도 끊었다. 지방에서 학교 생활을 하기 때문에 좋은 공기를 쐬며 유기농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복이라고 했다. 간식은 하지 않고 소식함으로써 비만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이전의 야행성이던 생활 패턴도 바꿨다. 정확한 시간에 식사를 하고, 충분히 잠을 자고, 아침과 저녁에는 두 시간씩 잔디밭을 맨발로 걸으며 운동을 한다.

여성의 상징인 유방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도 그녀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폐허가 된 가슴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는 유방암 환자 각자가 풀어내야 할 숙제죠. 하지만 유방암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더 큰 사랑의 마음으로, 더 아름다운 가슴을 가질 수 있습니다."

*** 든든한 바람막이는 '가족'

그녀의 유방암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다름 아닌 막내딸이었다. 같이 목욕을 하던 중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막내가 "엄마 왜 가슴에 구슬이 있어?"라고 물었다. 큰딸은 TV에서 봤다며 겨드랑이도 만져보라고 엄마를 채근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유방암 3기 말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당시 암세포는 림프샘뿐 아니라 뼈에까지 전이돼 있었다.

그녀가 유방암에 걸렸을 당시 두 딸은 10대와 20대였다. 지금은 어느덧 20대와 30대가 됐다. 그녀의 소망은 아이들이 엄마의 '불행'에 영향받지 않고, 자기 또래의 삶을 살아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헤어졌다. 투병 1년째 되던 해, 그녀는 과감히 두 딸을 캐나다로 보냈다. 떠나는 날 엄마와 다시는 못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울며 매달리는 딸들에게 말했다.'엄마는 반드시 살아있을 거다. 더 건강하고 더 새로운 삶을 살며 살아있을 거다'. 그리고 그녀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비록 떨어져 있었지만 두 딸의 건강한 삶과 자신에 대한 끝없는 사랑은 '내 삶에 대한 애정'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사운드 오브 뮤직'연출을 맡았을 때 소매를 걷어붙이고 조연출로 뛰어든 건 다름 아닌 큰딸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짊어지게 된 유방암입니다. 하지만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유방암에 걸리면 상실감으로 정신적으로 유약해지기 쉽죠. 이럴수록 노래하고, 취미생활을 하며 또 다른 삶을 일궈가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의 가슴을 만들어 그 위에 핑크리본을 달아보는 건 어떨까요?"

이주실씨는 목젖이 비틀어지는 웃음으로 다시 한번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 조기진단 UP!

■내 몸에 대한 관심 UP!

-샤워할 때, 속옷을 갈아입을 때 가슴과 겨드랑이를 쓰다듬어보는 습관을 들이자.

- 손으로 가슴을 UP해보면 조기 진단율이 UP!

■긍정적인 생각, 즐거운 마음을 UP!

-스트레스는 금물, 웃음이 보약이다. 암세포를 이기는 것은 내 몸의 면역력이다. 긍정적인 태도, 감사하는 마음은 면역력을 높인다.

*** 재발 DOWN!

■정기검진으로 재발률 DOWN!

-유방암 치료 5년 뒤에도 재발하는 사람이 많다. 긴장을 풀지 말고 검진을 주기적으로 받자.

■두려움 DOWN!

-재발 위험을 줄이는 좋은 신약이 많이 나오고 있으므로 미리 걱정하는 것은 금물. 의료진의 치료지침을 적극적으로 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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